미국이 내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하게 된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미 CNN 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마저도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50억달러(약 5조 8,37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국무부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설득해 47억달러로 낮췄다는 게 CNN의 설명이다.
CNN은 아울러 난데없이 등장한 ‘47억 달러’라는 숫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무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고 전했다. 급격히 인상된 청구서를 한국에 납득시키기 위해 기지ㆍ하수 등 일상적인 주둔 비용에서부터 ‘준비 태세’ 비용까지 “미 당국자들이 정색하고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각종 항목을 (청구서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이번 청구서에는 한미연합훈련과 순환 병력에 대한 비용도 포함됐을 수 있다고 CNN은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회 보좌관은 “우리가 전력 과시용으로 폭격기를 한반도에 들르게 할 때 마치 우버 운전기사처럼 한국에게 여행비를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지금까지 분담금 인상은 5~10% 내외에서 이뤄졌다면서, “5%와 500%의 차이는 정치적 타당성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대폭 인상 요구로 인해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좌절했으며, 공화ㆍ민주 양당 의원들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에서도 급격한 분담금 증액 요구로 인해 분노와 불안이 커지고 있으며,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헌신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CNN에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많은 원망(hard feelings)”이 나온다면서 “터무니없는 방위비 인상 요구로 인해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국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한반도 철수를 빌미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한국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달 중 서울에서 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체결을 위한 3차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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