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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연대임금’으로 10년 취업 빙하기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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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연대임금’으로 10년 취업 빙하기 넘자

입력
2019.11.1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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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정책으론 청년실업 악화 못 막아

기득권층 임금 양보로 신규 고용 늘려야

‘세비 30% 삭감’에 文 대통령 호응하길

정의당이 18일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법안을 내놓았다. 월 1,265만원인 세비를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제한해 390만원을 깎자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 예산 141억원이 절약된다. 연봉 3,000만원 짜리 청년 일자리 470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심상정 대표는 “세비를 최저임금과 연동하면, 저임금 노동ㆍ소득 격차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윤소하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정의당이 18일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법안을 내놓았다. 월 1,265만원인 세비를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제한해 390만원을 깎자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 예산 141억원이 절약된다. 연봉 3,000만원 짜리 청년 일자리 470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심상정 대표는 “세비를 최저임금과 연동하면, 저임금 노동ㆍ소득 격차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윤소하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신문사에 들어와 30년 넘게 일했다. 논설위원 평균 연봉은 신입기자 두 배 수준이다. 국내 300인 이상 기업의 30년 이상 근속자 임금은 1년 미만의 4.4배 (2016년). 한국일보의 임금 격차가 작은 이유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연대임금’ 때문이다. 임금을 올릴 때 한 해 걸러 정률과 정액을 적용한다. 예컨대 작년엔 정률 3%를 적용해 고참 월급이 더 많이 올랐다. 정액을 인상한 올해에는 입사 1년 차 기자와 정년퇴직을 앞둔 35년 차 논설위원 월급이 똑같이 올랐다.

한국 임금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질 좋은 일자리를 선점한 중ㆍ장년층이 기득권을 쥐고 있어서다. 이들이 장악한 국회와 정부는 중ㆍ노년층 이익을 주로 대변한다. 미래세대 부담을 늘리는 국민연금 개편, 정년 연장 등이 추진되는 배경이다. 청년과 중ㆍ장년층 간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ㆍ장년층은 정규직 일자리를 독점한 채 조직화한 노조 협상력을 이용해 임금 상승의 과실을 챙겨왔다. 생산성과 무관한 연공급 임금 체계의 최대 수혜층이다.

50, 60대는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주도했다. 이런 경험이 기득권 유지에 단결된 노조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 줬다. 중ㆍ장년층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동안 성장률은 고꾸라졌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청년층은 ‘유연한’ 노동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신규 노동시장은 파견노동과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메워졌다. 청년층이 온전히 차별 노동을 떠안았다. 평균 11개월 걸려 첫 일자리를 구하지만 10명 중 4명은 월 150만원 미만 급여를 받는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청년 대책은 차고 넘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자동화가 일자리 증발의 주범인 탓이다. 앞으로 10년이 더 문제다. 20여년 전 버블 붕괴로 극심한 취업 빙하기를 겪었던 일본은 청년층 인구가 급감해 오히려 구인난이 찾아왔다. 한국은 향후 10년간 취업대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2000년대 들어 가속화한 저출산 영향과 베이비부머 은퇴로 노동력 부족이 본격화하는 2020년대 후반에야 청년실업이 해소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10년 취업 빙하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유럽은 산별노조를 통한 연대임금제로 임금 격차가 작고 고용률도 안정적이다. 우리 노동계에서도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보듬고 가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기승전-임금투쟁 주장은 노동 분단을 더 심화시키는 헛발질이다. 중심부 임금은 더 상승하고 주변부는 더 도태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안팎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이 사회가 내 몫의 양보를 통해서라도 비정규직 문제, 하청노동자 문제, 불안정 청년 문제를 풀자고 설득해야 한다.”(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대기업ㆍ공공부문 고임금 노동자 몫을 줄여 비정규직ㆍ하청 노동자, 청년을 위해 쓰자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과 부자들이 곳간을 열지 않는데 노동자가 먼저 내 몫을 양보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반론에 막혀 진전이 없다.

마침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월 1,265만원인 국회의원 세비를 30% 삭감하자고 제안했다. 의원 300명 세비를 줄이면 연간 141억원. 연봉 3,000만원짜리 청년 일자리 470개를 만들 수 있다. 부산시와 경기도의회는 최근 산하 공공기관 임원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6~7배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대기업 임직원의 최고임금을 제한하는 ‘살찐 고양이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금 삭감에 동참했으면 싶다. 장ㆍ차관이 따르고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도 호응할 것이다. 당장 ‘사회연대기금’ 캠페인을 시작하자. 고액 임금을 줄여 청년 일자리기금을 만들자. 임금 상위 10%의 총 급여(202조원)를 5%만 줄여도 청년실업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선진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청년이 불행한 나라에 미래는 없다. 중ㆍ장년층이 청년 시절 누렸던 것의 반의반이라도 돌려주자. 청년실업을 해소할 특단의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길뿐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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