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7> 임솔아 ‘눈과 사람과 눈사람’
‘눈과 사람과 눈사람’의 작가 임솔아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명확해 보인다. 사르트르적인 의미에서의 ‘산문’, 그러니까 이 작가에게 소설은 ‘참여’의 장르다. 이 작품집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이 이른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대체로 분노의 정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한 작품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고자 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그 거울이 사회 전체를 모든 세부까지 송두리째 비출 수는 없다는 점이다. 거울의 크기와 각도는 유한한데, 따라서 주로 어디를 비출 것인가는 작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임솔아의 거울이 비추는 곳, 거기는 민영화되고 의학화된 권력의 현장, 곧 의료와 보험의 세계다.
가령 단편 ‘병원’의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은 아이러니한데, 그야말로 자살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가난한 그녀는 자살에 실패한 이상 스스로가 정신질환자임을 증명해야만 보험료를 지불받을 수 있다. 보험료를 지불받아야만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는데 보험료를 지불받기 위해서는 다시 병원 측의 진단서가 필요한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최종적으로 그녀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열쇠는 의사의 진단, 곧 그녀를 정신질환자들의 목록 속에 기입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의학 권력의 몫이다.
‘신체적출물’은 그보다 더한 상황을 보여 주는데, 이 작품에서 태국 여행 중 사고로 잘린 동생의 발가락은 최종 가격 400만원 이하로 환산된다. 발가락을 접합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진 돈 전체가 필요하다. 결국 접합을 포기한 발가락의 최종 명칭은 ‘신체 적출물’ 혹은 ‘감염성 폐기물’이다. 현대 사회를 비판할 때 흔히 두루뭉술하게 사용되곤 하는 ‘사물화’란 말의 정체가 바로 내 신체 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음을 섬뜩하게 보여 주는 장면인 바, 이때도 문제는 보험과 의료제도이다. 외국에서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에 대해 보험은 환자의 이름을 수혜 대상자의 목록에 기입하지 않는다.
언젠가 미셸 푸코는 현대의 권력이 점점 ‘생명 권력’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권력은 간단히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 ‘살리거나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 보험 수혜자 목록에 등재되지 않는 한 살려야 할 대상으로서 간주되지 않는 우리들, 정신질환자로서 등재되지 않는 한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작가 임솔아가 들고 있는 거울은 그런 이들을 향해 있다.
생명 권력의 현재태인 신자유주의가 무섭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판으로서는 별반 효력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인구와 통계와 효율로 환산되는 세계, 그 세계에 대한 실감이 문제다. 임솔아의 소설들이 바로 그 무서움의 실체를 보여 준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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