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관객 울린 노래 ‘엄마가 딸에게’가 동명 그림책으로
‘나영이네 냉장고’ 등으로 세대 잇는 다리… 40년 넘게 라디오 진행 덕
땅 딛고 부른 ‘아침이슬’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 “미련하게 오래 버텨” 내년 데뷔 50년
김광석이 부른 ‘변해가네’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을 작사, 작곡한 가수 김창기(포크 그룹 동물원)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곡을 만들었다. 세상에 꺼내 놓지 않았던 곡을 그는 선배인 양희은에게 건넸다. 곡의 화자는 자연스럽게 아빠에서 엄마로 변했다. 새 주인을 만난 곡엔 새 이야기가 깃들었다. 양희은은 딸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2절에 새로 썼다. 엄마와 딸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슴속 얘기를 꺼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양희은이 들려준 노래 ‘엄마가 딸에게’(2015)가 세상에 나온 과정이다.
◇”어머니 예술적 기질 딸들이 나눠가져”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곡에서 모녀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얘기는 평범했지만 반응은 특별했다. “(공연에서) 이 노래 하면 다 울어요. 딸이 엄마를 안아주기도 하고요.” 남편 혹은 아들에 가려졌던 어머니와 딸은 대중가요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모녀의 서사가 메마른 대중가요에서 ‘엄마가 딸에게’는 엄마와 딸의 ‘뜻밖의 만남’이었다. 이 노래가 여성 관객들에게 특별하게 다가간 이유다.
양희은이 여성 관객을 울린 ‘엄마가 딸에게’가 최근 같은 이름의 그림책(위즈덤하우스)으로 나왔다. 짧은 노래에 다 담지 못한 가깝지만 먼 모녀의 일상은 그림으로 섬세하게 펼쳐진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밥을 차린 뒤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는 엄마의 모습은 짠하다. ‘너의 삶을 살아라….’ 잔뜩 웅크린 엄마는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바란다. 모진 현실에서 양희은이 노래처럼 “네 삶을 살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외할머니, 어머니 덕분이었다.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네 삶을 살아라’고 하셨죠. 엄마가 배우가 되고 싶어 서성일 때 외할아버지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렸을 엄마를 감싸 준 분이 외할머니셨거든요. 자신과 달리 딸은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딸 셋의 삶에 일체 참견을 안하셨어요.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아버지가 너무 일찍(39세) 돌아가셔서 내 치마 폭에만 싸서 너희를 기르면 밖에 나가 손가락질 받을 거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꿈이셨고 노래도 굉장히 잘하는 엄마의 예술적 기질을 저와 희경(배우)이 등 딸들이 나눠 가졌죠.”
‘엄마가 딸에게’에서 모녀는 서로의 상처를 바라본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창기씨가 부모와 아이들의 소통 문제를 심각하게 본 것 같아요. 제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도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분이 상담해주는 코너가 있는데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엄청 심각해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집중해서 얘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한 일이더라고요.”
◇미국에서 귀국한 양희은의 결단
양희은은 ‘어른의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장은 청춘의 아픈 시간에 늘 귀를 댔다. 양희은은 고단한 삶에 집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청춘을 보듬는 노래 ‘나영이네 냉장고’(2014)를 냈다. 그가 여러 세대의 삶을 아울러 노래할 수 있었던 데는 라디오의 공이 컸다. CBS ‘세븐틴’으로 시작해 1971년부터 40년 넘게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청취자 얘기에 귀 기울인 결과다.
평범한 사람들과 꾸준히 함께 한 양희은의 음악엔 시대와 삶이 담겼다. 그는 ‘아침이슬’(1971)로 서슬 퍼런 군부정권의 민주주의 탄압에 저항했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에선 사랑과 삶의 헛헛함을 진하게 우려냈다. 여느 가수와 달리 양희은은 음악에서 늘 땅을 딛고 서 있었다. “미국에서 7년을 살다 1993년 귀국해 음악을 들으니 많은 음악이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았어요. 음악적으로 낮게 깔린 베이스 소리가 없고 참 이상하다 싶었죠. 음악 시장의 무게 중심이 10대에 확 쏠린 탓도 있었어요. 특정 세대에 대한 편중이 너무 심해 귀국해 낸 첫 앨범 ‘양희은 1995’에 실릴 노래로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만들었죠. 일부러 제목에 나이를 넣었어요. 당시 제가 40대이기도 했지만, 누구라도 중심을 잡아주는 게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포크음악의 대모’는 지난달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노래로 동시대의 삶을 위로한 공로였다.
◇”7만원짜리 가수” 안 되려 ‘소녀 가장’의 자존심
양희은은 내년 데뷔 50년을 맞는다. 반백년의 무게를 노장은 오히려 툭 내려놨다. “미련하게 오래 버텼죠. 눈길 딴 데로 한 번 안 돌리고, 원래가 미련해요 제가 하하하.”
그의 웃음은 단단했다. 수없이 ‘인생의 한계령’을 넘으며 생긴 굳은살이었다. 양희은은 1981년 삶의 끝자락에 섰다. 난소암 말기였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 일이다. 석 달 시한부의 삶을 선고 받았지만 양희은은 시련을 이겨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소녀 가장’은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며 버티고 버텼다. “‘아침이슬’ 음반 취입하고 음반사 대표가 7만원을 주더라고요. 당시엔 큰돈이었죠. 근데 안 받았어요. ‘이 돈 받으면 제가 7만원짜리 가수가 되는 거잖아요’라면서요. 집에 오는 길에 엄청나게 후회했죠. 연탄, 쌀을 살 수 있는데 하면서요.”
양희은은 최근 포르투갈로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로 ‘여성시대’ 진행 20년을 맞아 선물 받은 특별 휴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오랜 외출이었다. 1981년 배낭을 매고 첫 해외여행을 나섰을 때 행선지도 포르투갈이었다. 뱃사람의 한이 서린 노래 파두(fadoㆍ포르투갈 민요)의 고향에서 그는 어떤 ‘운명’을 만나고 왔을까. “데뷔 50년 준비요? 당분간 입 다물고 있으려고요. 일로 보여줘야죠,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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