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때마다 불거지는 현역 물갈이론 
 매번 40% 안팎 초선 의원 새로 등장 
 권노갑, 김종인 이어 누가 공천 칼자루 쥘까 
국회 전경. 홍인기 기자

‘바꿔라 바꿔라 다 바꿔라/부패한 정치인 다 바꿔라/이번이 아니면 못 바꾸니/무능한 정치인 바꿔보세~’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오나라)을 개사한 ‘물갈이송’ 가사인데요. 각 당이 본격적인 총선 채비에 들어가자 물갈이론이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어항 속에 든 금붕어냐”라며 일각에서 반발하기도 하지만, 앞물이 뒷물에 밀려 바다로 나가듯 의원직 역시 때가 되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는 것이 순리겠죠.

총선의 계절을 맞아 ‘떠나는 사람’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각 진영의 거물급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교롭게 같은 날(17일) 불출마를 발표하면서 정치권이 폭풍전야의 분위기가 됐죠.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ㆍ표창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도 충격을 던졌습니다. 20대 국회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유권자 사이에선 ‘국회 심판론’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황인데, 무게감 있는 정치인들의 내려놓기가 인적 쇄신 논의에 불을 붙인 셈입니다.

 ◇도대체 현역 의원 물갈이는 왜 하나? 
2004년 3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으나 이를 주도한 야당인 한나라당과 구 민주당은 그 해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역풍을 맞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 각 정당들은 주로 정치적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물갈이를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국민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고인 물’을 대신해 신선한 새 얼굴을 내세워 “미운 정치인들은 이제 없으니 우리 당 예쁘게 봐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격변 후 치러진 2004년 총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권은 정치 신인이었던 86세대들을 대폭 기용했고,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당시 최병렬 대표를 포함한 중진 의원 물갈이와 개혁 공천 단행으로 역풍을 막아내려 애썼죠. 결국 이렇게 탄생한 17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초선 의원 비율(62.5%)이 가장 높은 국회라는 기록을 남겼어요.

 ◇물갈이 역풍도 있었다고? 

다만 물갈이 역시 제대로 못 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하겠죠. 2016년 4ㆍ13 총선에서 제1당을 자신하던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은 “김무성 대표가 현역 의원 40여명의 물갈이 명단을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받았다”는 ‘살생부 논란’으로 공천 시작부터 삐걱거렸어요. 이 논란은 유승민 의원의 탈당과 이로 인한 김 대표의 ‘옥새 쿠데타’까지 소동이 끊이지 않았죠.

5개 지역구 후보자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3월 24일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부산=뉴시스

계파갈등으로 얼룩졌던 새누리당의 물갈이는 현역 의원 43명을 교체하고도 ‘밥그릇 싸움’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결국 총선 결과는 예상을 깨고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제1당이 됐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패배했죠.

 ◇공천 ‘저승사자’ 역할 누가 맡아왔나? 

물갈이를 잘하려면 ‘공천’부터 제대로 해야겠죠. 그렇지만 의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공천권 칼자루를 직접 휘두르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공천 탈락 인사들에게 원망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자칫 잘못했다간 다신 정계에 발을 들이기도 어렵죠.

권노갑(오른쪽) 당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 2000년 12월 당 최고위원회를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왕태석 기자

때문에 성공적인 물갈이를 위해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저승사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서는 동교동계의 좌장이자 실세 중 실세로 꼽히던 권노갑 고문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의 텃밭인 호남 지역 중진들을 직접 주저 앉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호남 중진들은 권 고문의 전화를 피해 도망을 다니기도 했는데, 권 고문은 전화뿐 아니라 직접 만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며 불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네요.

 ◇김종인ㆍ이해찬 악연도 물갈이 때문? 

박근혜 정부 4년 차에 열린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했죠. 김 대표는 전두환 정권 당시 민정당 의원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탄생의 1등공신 중 한 명이기도 했죠. 그는 칼자루를 쥐자 이해찬ㆍ유인태ㆍ전병헌 등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민주당에서 구설이 잦던 정청래 전 의원 역시 컷오프 시켰어요. 당시 이해찬 의원은 김 대표를 두고 “(내게 선거를 진) 감정이 남아있던 것”이라고 분노했죠. 두 사람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나란히 서울 관악을에 출마, 당시 이해찬 평민당 후보가 민정당 김종인 후보를 5,000여표 차로 이긴 얄궂은 인연을 지닌 사이입니다.

김종인(왼쪽)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2016년 3월 11일 충남 공주에 출마한 박수현 의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하는 이해찬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공주=연합뉴스

민주당 공천 탈락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한 이해찬 대표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튼튼하게 당을 닦아 재집권할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저의 마지막 역사적 소임”이라며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는데요. 이번엔 그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천 저승사자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죠.

 ◇그럼 다음 국회도 대폭 바뀌는 건가? 

내년 4월 총선 역시 현역 의원보다는 정치 신인을 뽑겠다는 물갈이 여론이 유권자들 사이에선 압도적입니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8일 전국 성인 1,003명(95% 신뢰 수준ㆍ표본 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38.5%가 ‘내년 총선에서 현역의원의 50% 이상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답했어요.

최근 나란히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임종석(왼쪽)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 당도 제대로 된 물갈이를 벼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와 임종석 전 실장을 비롯해 직ㆍ간접적으로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이들이 여럿입니다. 역시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은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에서 저까지 포함해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분명히 하거나 의사가 강한 분들은 얼추 15명에서 20명 가까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죠. 내부에선 이런저런 말도 나오긴 하지만요.(☞ 관련 기사 바로 가기) 한국당도 김세연 의원이 당 해체와 현역 의원 불출마 등 고강도 쇄신을 요구하면서 중진들의 용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다만 썩은 어항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수질을 제대로 맞추지도 않고, 말 잘 듣는 내 편 금붕어들만 챙긴다면 제대로 된 물갈이라고 할 수 없겠죠. 어항의 물을 가는 데도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시대정신이나 정책, 그리고 정치발전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물갈이를 악용했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겠죠.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실제로 의정ㆍ정당 활동에 도움이 되고, 기존 국회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역대 국회의 초선 비율, 얼마나 됐나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제6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13대 총선 이후 매번 초선 의원 비율은 40% 안팎을 유지했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의원들이 총선 때마다 새로 등장한 셈이죠. 각 국회의 초선 의원 비율은 13대(55.5%) 14대(39.1%), 15대(45.8%), 16대(40.7%), 17대(62.5%), 18대(44.8%), 19대(49.3%), 20대(44%)였는데요. 과연 21대 총선에서는 몇 명의 ‘새 얼굴’이 국회에 들어오게 될까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영상] 딴 말 하고, 격분하고…정치권 물갈이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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