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감시·통제 역할서 벗어나 시위 참가자들과 소통 신뢰 쌓아
일일이 눈 마주치며 얼굴 익혀 일사천리로 갈등 중재·민원 처리
시위 급증했지만 경찰 부상 줄여… 도입 1년 집회 현장의 윤활유로
“형님, 오늘도 오셨네요.” “날도 추운데 잠깐 하고 들어가셔요.”
지난 16일 보수단체 태극기 집회가 열린 서울역 광장. 집회 시작 2시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군중들 사이로 한 경찰관이 나긋나긋 인사를 건네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최종득 경위다. 최 경위가 걸친 형광색 조끼에는 ‘대화 경찰’이란 네 글자가 선명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윤활유 역할이다.
최 경위는 바쁘게 돌아 다녔다. 얼굴 익힌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 농담도 주고받지만 좋은 자리를 잡아두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회 참가자와 다른 시민들 사이에서 다툼도 종종 일어난다. 그 때마다 최 경위가 얼른 가서 중재해야 한다. 과연 될까 싶은데, 의외로 순순히들 최 경위 말에 따랐다. 최 경위는 “1년 정도 시위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낯을 익히고 신뢰관계를 쌓다 보니 이제는 시위 참가자나 주최 측이 ‘이것 좀 해결해달라’며 먼저 저를 찾는 경우도 많다”며 웃었다.
20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도입 1년째를 맞은 대화 경찰 제도가 집회 시위 현장의 갈등을 누그러뜨리는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화 경찰은 말 그대로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 시민과 적극 소통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전에는 정보 경찰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 시위대와 소통보다는 감시와 통제에다 중점을 뒀다. 시위와 집회가 시민의 권리인 이상, 무조건 통제할 수만은 없다. 경찰은 스웨덴 모델을 따와 지난해 10월 ‘한국형 대화경찰 제도’를 도입했다.
대화 경찰 첫째 임무는 시위대와 친밀감을 쌓는 것이다. 평소에 충분히 소통해둬야 긴급이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관련자들을 좀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래서 대화 경찰의 대화는 실제 대화보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아이 컨택트(Eye Contact)’가 더 많고 중요하다. 평소 계속 눈을 마주친 사이라면 위급상황이라 해도 사람인 이상 상대의 말을 듣게 되어 있다. 그래서 대화 경찰은 햇볕이 제 아무리 강렬해도 선글라스나 마스크 같은 걸 절대 쓰지 않는다. 맨 얼굴, 맨 눈을 내놓고 사람들 사이를 다닌다.
집회 때 인근 주민, 상인들 민원을 처리하는 것도 대화 경찰 몫이다. 여기엔 교통 흐름과 시위대 행진을 잘 조화시키는 업무도 들어간다. 지난 16일 태극기 집회 때도 최 경위는 주변 교통상황을 꼼꼼히 챙기면서 중간중간 “형님들 잠시만요”를 외치면서 행렬 중간에 뛰어들어 행진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이어나가게 했다. 최 경위는 “예전에만 해도 경찰이 중간에 끼어들면 ‘네가 뭔데 막느냐’는 반발이 나왔을 텐데 지금은 서로 불만이 있으면 있는 대로 터놓고 얘기하면서 조율해가며 그렇게 행진을 한다”며 “확실히 집회 현장 갈등이 줄어들긴 했다”고 말했다.
대화 경찰의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올해 1~9월 기준 전국의 집회 건수는 7만4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만8,822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경찰 부상자는 74명에서 64명으로 16%나 줄었다. 일부 과격 집회 현장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현장에서는 충돌이 줄었다.
일부에선 대화 못지 않게 단호한 법 집행도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폭력이 발생하기 전 대화로 갈등 요소를 풀자는 게 대화 경찰이지, 이미 발생한 불법 행위를 덮어주자는 게 아니다”라며 “대화 경찰의 활동 기법을 더 전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금 1,430명 수준인 대화 경찰 규모도 내년에는 더 늘릴 방침이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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