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점거와 거리 시위, 경찰 진압에 쏠렸던 홍콩 사태가 미국과 중국의 국제전으로 확산됐다. 미 의회가 ‘홍콩 인권민주주의법(이하 인권법)’을 통과시켜 중국을 압박할 지렛대를 확보하자, 중국은 “보복하겠다”며 거칠게 반발했다. 수십 명으로 줄어든 시위대가 홍콩이공대(이하 이공대)에서 최후의 저항을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 6월 시위 본격화 이후 처음으로 홍콩 유권자들의 민의를 묻는 24일 구의원 선거를 앞두고 투표소 이전 논란이 불거지며 선거 열기가 점차 달아오르고 있다.
경찰은 20일까지 나흘째 이공대를 봉쇄하며 시위대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현지 언론은 60~100명가량이 캠퍼스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의료 지원 자원봉사자도 모두 떠난 상태다. 그렇다고 경찰과 맞붙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17일 시위대가 80m는 족히 날아가는 화살로 경찰관을 공격한 이후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데 그치는 근접 진압무기 대신 콜트AR-15, SIG 516 소총 등 사거리 400~500m에 달하는 강력 살상무기로 무장한 탓이다.
시내 곳곳에서는 산발적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출근길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켜 혼잡을 빚었고, 점심시간에는 수백 명의 직장인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휴교령이 해제되면서 고등학생 100여명이 등굣길에 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병력을 분산시켜 이공대에 갇힌 시위대를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18일 밤 이공대 인근 야우마테이에서 시위를 벌이다 붙잡힌 213명을 폭동죄로 모두 기소한다고 밝혔다. 홍콩 사태 이후 단일 기소로는 최대 규모다. 18, 19일 이틀간 이공대와 주변에서 1,100여명이 붙잡힌 만큼, 기소 인원은 급증할 전망이다. 시위 5개월여간 누적 체포 인원은 4,500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시위 양상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미국이 불쏘시개를 던지면서 다시 시위대에게 동력을 불어넣을 참이다. 지난달 15일 미 하원에 이어 상원도 19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인권법을 가결했다.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현재 부여하고 있는 관세, 무역, 비자 등 특별지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이다.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인권을 탄압하는데 책임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미국 비자발급을 금지하고 자산도 동결할 수 있다.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해 연일 강경진압을 촉구하며 홍콩 사태에 개입하는 중국을 옥죌 초강수인 셈이다.
중국은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성명을 내고 “제 불에 타 죽지 않으려면 즉시 해당 법안의 입법을 막아야 한다”면서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강력한 조치로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차관은 윌리엄 클라인 주중 미국대사 직무대행을 불러들여 상원의 법안 통과에 엄중 항의하고, 미 행정부는 이 법안 입법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홍콩 인권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선관위 펑화(馮驊) 주석은 “대학 캠퍼스 안에 설치하려던 투표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경찰의 실탄 발사 이후 시위대와 경찰이 맞붙었던 홍콩대, 중문대, 교육대 등이 모두 포함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전했다. 또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이공대에는 경찰 배치를 늘려 다른 지역 투표에 지장을 미치지 않도록 차단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일부 민주진영 후보들은 “가령, 중문대의 경우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곳은 투표소와 수백 m 이상 떨어져 있어 상관이 없다”며 “투표소 변경은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반발했다. 홍콩 유권자 413만명은 이미 지난달 투표 카드(poll card)를 발급받아 633개(일반 610개, 전용 23개) 투표소의 위치를 확인한 상태다. 24일 홍콩 18개 선거구에서 임기 4년의 구의원 452명을 새로 뽑는다.
홍콩 정부는 예정대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누차 공언하고 있지만 1주일간 연기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펑 주석은 “투표자의 안전에 영향을 끼치는 폭력 사태가 90분간 지속될 경우 선관위는 투표를 연기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투표 당일 2만여명의 진행요원들이 각지의 투표소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한다면 투표 연기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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