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인천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은 올해 초부터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자치단체나 주변에선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와 광역자치단체들이 복지 사각지대 발굴 강화를 약속한지 불과 나흘 만에 이런 참변이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또다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21일 인천 계양구와 계양경찰서에 따르면 19일 낮 12시 39분쯤 인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A(49)씨와 그의 아들(24), 딸(20), 딸의 친구(19) 등 4명이 함께 숨진 채 소방당국에 의해 발견됐다. 복지부와 17개 광역자치단체가 겨울철 위기가정을 적극 발굴하고 촘촘하게 지원하겠다고 발표한지 나흘만이었다.
A씨 가족은 올해 초부터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A씨가 실직한 이후부터 3개월간 긴급복지 생계지원을 받았다. 생계지원금은 3인 가족 기준으로 올해 월 97만3,800원이 책정됐다. A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아파트 임대료 명목의 주거급여도 월 평균 24만원을 지원 받았다. 그러나 생계나 의료급여 혜택은 받지 못했다.
구 관계자는 “A씨가 이혼한 전 남편 등 부양의무자에 대한 조사에 부담을 느끼고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A씨는 차상위계층 (요양급여) 본인부담 경감 지원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이 생계급여 등을 신청하지 않은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들은 사망하기 전에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안에선 이들이 각자 쓴 유서가 발견됐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몸이 아파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수 년 전 이혼한 뒤 자녀들과 함께 생활해온 A씨는 바리스타 일을 하다가 손 떨림 증상으로 실직했으며 그의 아들도 한때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최근에는 무직 상태였다. 같은 대학을 다니던 딸과 그의 친구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휴학 중이었다.
그러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인 2015년부터 운영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이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공공요금이나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등 정보를 분석해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이 시스템은 올해부터 수집되는 정보 수가 15개 기관 29종에서 17개 기관 32종으로 확대됐으나 소용없었다. A씨 가족이 사망 전까지 아파트 관리비 등을 밀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공요금을 체납하지 안았던 세 모녀도 자치단체 도움을 받지 못했다. 복지통장, 명예사회복지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단과 이웃 등도 A씨 가족의 어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
구 관계자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위기가구는 본인 요청이 없거나 발굴 시스템을 통해 찾지 못하면 공무원이 직접 발로 뛰거나 이웃의 제보가 있어야 가능하다”라며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찾아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A씨 등 4명의 시신을 부검한 뒤 ‘가스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추후 나올 국과수 정밀 감정 결과를 토대로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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