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김준홍 대표 “음파에 데이터를 실어 보내는 음파통신 개발”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 김준홍 대표
부친은 사운드카드 옥소리 前대표
캄캄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내보내 소리가 사물에 부딪쳐 되돌아 오는 것을 듣고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한다. 직원 8명의 작은 회사인 아이시냅스는 박쥐의 초음파 활용 원리를 이용해 통신 기술을 개발한 신생(스타트업) 기업이다.
이 업체가 개발한 음파통신은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에 데이터를 실어서 전달하는 기술이다. 뿐만 아니라 음파로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준홍(37) 아이시냅스 대표는 “음파통신은 스마트폰에 쓰이는 저전력 블루투스(BLE) 기술이나 위성항법장치(GPS)보다 정확한 위치 측정이 가능하다”며 “특히 실내에 들어가면 위치파악이 어려운 GPS와 달리 실내에서도 위치측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밀위치 측정을 위한 전문 기술인 초광대역통신(UWB) 장비보다 저렴한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UWB는 정밀 측정이 가능하지만 고가 장비이고 크기가 커서 스마트폰에 내장할 수 없다”며 “음파통신은 소프트웨어(앱)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설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파로 위치를 측정하고 데이터도 전송
원리는 간단하다. 일반 스피커를 통해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음을 내보내면 앱이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수신한 시간차를 계산해 정확한 위치를 측정한다. 따라서 김 대표는 “대략적 위치확인만 필요한 경우는 블루투스나 GPS를 활용하고 정밀측정이 필요하면 음파통신을 활용하면 된다”며 “장애물이 없는 상태라면 오차범위 20㎝ 이내로 위치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소리를 내보내는 스피커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저가 제품도 상관없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또한 사람에게 들리지 않아서 일상 생활이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위치측정과 더불어 소리에 데이터를 실어 보내는 기술이다. 음파에 특정 명령 수행이 가능한 데이터를 실어 보내면 이 소리를 수신한 기기가 특정 반응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수의 공연장에서 음악 소리에 특정 음파와 데이터를 실어 보내고 관중들이 들고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응원봉에 마이크를 달아 이 소리를 수신하면 특정 빛깔과 모양으로 빛나게 하면서 객석 전체를 전광판처럼 활용할 수 있다. 즉 노래와 함께 응원도구들이 일제히 원격 제어로 빛나는 조명이 된다.
음파통신을 활용하면 TV로도 응원봉을 제어할 수 있다. TV 스피커를 통해 특정 음파에 데이터를 실어 보내면 음악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LED 응원봉이 스튜디오의 방청객이 들고 있는 LED 응원봉과 동일하게 반응한다. 김 대표는 “마치 스튜디오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처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미 아이시냅스의 기술은 제품으로 등장했다. 2014년에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음파통신을 이용한 응원봉을 내놓았고 바로 매출이 발생했다. 김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4년 동안 음파 통신이 적용된 응원봉 80만개를 구입했다”며 “내년에 일부 기능을 개선한 새로운 응원봉이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제품은 내년에 열릴 모 유명 걸그룹의 콘서트에서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음파통신은 산업 현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공장에서 이동하는 각종 산업용 기기와 로봇, 부품들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철골 구조물이 많은 공장에서 전파 통신을 사용하면 장애가 발생해 정확한 위치 측정이 어렵다”며 “음파통신은 이런 문제가 없고 UWB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현대자동차, SID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이미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는 울산 공장에 시험 삼아 아이시냅스의 음파 통신을 적용 중이다.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기기의 위치 확인을 하기 위해서다. 일련의 사업 덕분에 아이시냅스의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가량 오를 전망이다.
음파통신은 공익적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소리에 데이터를 실어 보내면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안전한 이동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검토해 볼 만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선친에 이어 2대째 소리 연구
음파통신을 개발한 김 대표는 원래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산업용 장비를 설계하는 연구원이었다. 고려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로봇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로봇에 들어가는 감지기를 주로 다룬 그는 삼성전자에 입사해서 진동을 측정해 기기의 고장 여부와 수명을 예측하는 진동 기술을 연구했다. 그는 “진동과 음파는 원리가 같다”며 “진동 기술을 음파로 확장하는 사업을 해보기 위해 2014년 9월에 창업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결혼 자금으로 모은 돈을 모두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에 결혼도 했다. 앞일이 걱정된 양가 집안의 사업 반대가 컸다. 그는 “어머니께서 사업을 하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하셨고, 처가댁에서는 월급 걱정을 했다”며 웃었다. 심지어 다니던 삼성전자에서도 퇴사를 말렸다. 그는 “사표를 냈으나 계속 반려돼 퇴사까지 2개월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업에 대한 확신이 강했던 김 대표에게는 그런 걱정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1세대 벤처기업인이었던 아버지도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신감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김 대표는 사업 초기에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했다. 1인 회사나 다름 없었기에 회계, 영업 등 기존에 하지 않던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창업하고 3개월 만에 밖이 몹시 춥고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버지께서 사업을 말리신 이유를 절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컴퓨터(PC)에서 소리를 재생해 주는 장치인 사운드카드 ‘옥소리’로 유명한 벤처기업 옥소리 대표를 지낸 김범훈씨였다. 한때 대북사업에도 관여해 수 차례 방북 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11년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데이터를 소리로 바꿨다면 아들은 소리를 데이터로 바꾸는 사업을 하는 셈이다.
1990년대 외산 사운드카드인 ‘사운드 블래스터’와 맞서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알린 고인을 여러 번 만나 인터뷰한 기억이 떠올랐다. 고인과 있었던 추억을 꺼내놓자 김 대표가 부친 생각이 났던지 덥석 손을 잡았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 인터뷰를 하게 된 흔치 않은 인연이었다.
김 대표가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선친의 영향도 컸다. 그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에 매달렸다”며 “열심히 일하는 자세를 물려주셨지만 정작 자식들이 사업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만약 사업을 해야 한다면 대기업에서 적어도 5년 이상 일하며 세상을 배운 뒤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래서 김 대표는 삼성전자에 들어가 4년을 다녔다. 그는 “삼성전자에 근무할 때 경기 수원과 충남 탕정 공장을 돌아보고 국가에 사업으로 이바지하는 게 어떤 것인 지 알게 됐다”며 “굉장한 경험이었다”고 술회했다.
아이시냅스는 내년에 엔터테인먼트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 음파통신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대형 마트를 운영하는 업체 및 정유사와 음파통신 도입을 논의 중”이라며 “마트와 주유소에서 고객들의 위치를 확인해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인 주유소 등에서 별도의 위치확인 장치를 차량에 설치하지 않아도 이용자의 스마트폰 앱만으로 위치를 확인해 각종 편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를 ‘커넥티드 커머스’라고 불렀다. 이용자의 위치 확인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그는 “편의점이나 세탁소 등 다양한 분야로 커넥티드 커머스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위치 확인 장치가 따로 필요 없고 앱만 있으면 돼 경쟁에서 큰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김 대표는 음파통신 및 음파를 이용한 정밀측위 분야기 커다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음파통신과 관련해 7개의 특허를 등록 및 출원했다”며 “내년에 관련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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