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작업능력 우수하면 최임 맞춰줘야… 직능평가 성적 나쁘기를 바라야
직원 평균 월급 59만원… 부모ㆍ장애계선 차별이라며 압박
“발달장애인 근로인(직원)이 비장애인만큼 일을 잘하면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입장에선 그 친구를 내보내는 게 가장 쉬운 선택입니다. 작업능력이 비장애인 못잖은 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런 직원이 1명만 생겨도 시설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거든요.”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마포푸르메직업재활센터(푸르메센터)에서 만난 김재일 센터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다음달로 예정된 정부의 작업능력평가에서 직원들이 너무 우수한 작업능력을 보여주면 안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작업능력이 비장애인의 70%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직원ㆍ훈련생 21명이 포장용 상자 등을 조립해 하루 6만원(순수익)을 버는 현재 수익구조에선 언감생심이다. 최저임금을 지급하려면 시설이 문을 닫을 판이고, 그렇다고 오갈 데 없는 식구를 내쫓을 수도 없다. 장애인에게 근로기회를 제공해 직업능력을 길러주고 최종적으로 일반 기업에 취직하도록 도와야 할 비영리기관의 책임자가 정작 직원들의 평가성적이 나쁘기를 바라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651곳의 직업재활시설이 직면한 현실이다.
◆기업이냐 보호시설이냐
푸르메센터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대다수(573곳ㆍ88%)를 차지하는 보호작업장 가운데 하나다. 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병원 지하에 설치된 초등학교 교실 5, 6개 규모의 비교적 넓은 공간에 작업장과 사무실이 차려져 있다. 발달장애인과 사회복지사들이 매일 9시30분에 출근해 임가공 작업을 하거나 미술활동을 통해 천가방따위의 소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매일 정시에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일부터가 발달장애인 직업재활교육의 일부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 따르면 보호작업장은 직업능력이 낮은 장애인을 고용해 실제로 일을 시키면서 직업적응능력과 직무기능을 향상하고 이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한편, 최종적으로 비장애인들과 일하는 환경 등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발달장애인 등 중증 장애인이 일반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초능력을 키워주라고 설립된 비영리기관이다. 이런 시설 운영과 관련된 장애인복지법의 방점은‘직업재활’에 있다.
그러나 실상은 중증 장애인 가운데서도 발달장애인을 장기간 돌봐주는 보호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직업재활시설이 고용한 전체 장애인(1만8,205명) 중 81%가 발달장애인이다. 만 19세에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2년 정도의 졸업유예 기간을 마친 이후, 사회복지관 대신 고르는 선택지인 셈이다. 김 센터장은 “성인 발달장애인을 14만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이들이 낮 시간 동안 머물 곳이 필요하다”이라면서 “발달장애인과 부모들 입장에선 이용료를 내는 사회복지관보다는 적으나마 월급을 받고 직업활동의 기쁨을 맛보는 보호작업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푸르메센터의 비장애인 종사자들은 장애인 직원 관리자 역할과 함께 돌봄 활동을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의 출근현황을 점검하는 것부터 점심식사를 위한 이동, 위생관리까지 푸르메센터 내 거의 모든 활동이 김 센터장과 사회복지사 2명의 손을 거쳤다. 이날 할 일은 유명 커피 체인점에 납품할 다이어리 포장상자를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세 사람의 작업지시 없이는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직원들은 상자의 원재료인 판지를 나르거나, 1차적으로 접어서 선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상자형태로 만드는 등의 잘게 나뉘어진 작업은 곧잘 해냈지만 손이 느린데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원재료가 다 떨어지면 다른 직원과 협업하지 못해 사회복지사가 새로운 재료를 가져다 주거나 지시를 내리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10시쯤부터 오후4시30분까지 이어진 작업시간 내내 “OO씨 일어나요” ,“△△씨 어딜 쳐다보고 있어요”라며 직원들을 쉬지 않고 독려하고 타일렀다.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온종일 전혀 작업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도 있었다. 오후에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뒤 실수로 변을 몸에 묻히고 돌아온 직원 옷을 갈아 입히느라 작은 소동이 일기도 했다. 최금애 사회복지사는 “가르쳐주면 빨리는 못해도 천천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요령을 터득하는 것 자체가 직업재활”이라면서도 “익숙하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는 외면하는 직원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 역시 “작업능력이 떨어져 정식으로 고용할 수 없는 훈련생도 있지만 차마 계약유지가 어렵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푸르메센터에 들어오려고 대기하는 발달장애인만 11명에 달하고 길게는 수년씩 기다려야 취업이 가능한 보호작업장도 있다.
◆자원봉사자 손으로 생산량 늘려
문제는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을 보호하는데 그치지 말고 설립취지대로 취업을 위한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최종적으로는 장애인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요구다. 장애인 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 적용 예외 제도의 폐지까지 주장한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장애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평가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적용을 예외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가 직업재활시설이 중증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도록 용인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범위를 작업능력이 비장애인의 ‘90% 이상인 경우’에서 ‘70% 이상인 경우’로 확대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직업재활시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신청했다가 반려돼 최저임금을 받게 된 장애인은 전국에서 28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시설에서 1명이라도 생기면 운영에 큰 타격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직업재활시설이 장애인 정식 직원에게 지급한 평균 월급은 59만1,000원에 불과하다. 푸르메센터처럼 매일 6시간씩 주 5일 근무하는 시설의 경우, 최저임금 대상자에게 매달 지급해야 하는 월급은 단순계산으로 최소 90만3,600원에 달한다. 작업능력평가를 맡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평가결과를 불신하는 발달장애인 부모가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며 공단 등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작업능력평가에서 70% 이상을 받은 대상자 비율이 2017년 9.3%에서 지난해 2.9%로 급감하면서 직업재활시설의 평가 왜곡 논란이 벌어지자 정부가 평가 횟수를 늘리는 등 보완책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직업재활시설들은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를 동원해 생산량을 늘리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어떻게든 수익을 늘리려는 의도다. 직업재활시설운영자들 사이에서는 본말이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익이 늘어나 장애인에게 돌아가는 월급이 커지니 부모들은 물론 예산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만족스러워 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의 직업훈련능력이 향상되는지는 의문이라는 얘기다.
푸르메센터 역시 이러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18일에는 자원봉사자가, 19일에는 구청에서 파견된 노인일자리사업 근로자와 사회복무요원이 생산업무에 투입됐다. 장애인들이 오후 4시30분 정시 퇴근한 이후에 비장애인 종사자들만 남아서 밤샘 작업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푸르메센터의 임가공 수익은 전액 비장애인을 제외한 직원들 임금으로 지급되는데 11, 12월 월급을 지급하고 나면 수익이 전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센터장은 “푸르메센터는 직원에게도 4만~13만원 수준의 월급만 지급한다”라면서 “작업량을 늘려 임금을 높이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직원의 재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푸르메센터는 보통 오전에는 체육활동이나 미술수업 등을 진행한다.
◆일반 취업 일자리 늘려야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당초 고용노동부와 복지부가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직업재활시설이 법적 취지대로 직업교육시설로 기능하도록 장애인 보호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만들어 이달 중 공개하려 했지만 다음달로 시기가 미뤄졌다. 장기적으로 누가 예산을 부담할 것인지를 두고 부처 간 이견 때문이다. 중증 장애인이 보호작업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일반 기업들이 생산성만 따지다 보니 중증 장애인 채용을 기피하기 때문인데 이런 풍토를 정부 정책으로 개선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발달장애인에게 보다 나은 근로기회를 제공하라는 장애계의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발달장애인 청소년의 부모인 민자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충주시지회장은 “발달장애인 부모 가운데 다수는 여전히 자녀가 스트레스나 차별을 덜 받는다는 이유로 보호작업장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부모가 떠난 뒤 자녀가 자립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민 지회장은 “중증 장애인을 보호하는 직업재활시설의 역할을 인정하더라도 보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며 “발달장애인의 업무를 돕는 직무지도원과 3, 4명의 발달장애인을 묶어서 한 팀으로 공장 등 현장에 투입하는 방식이 충청북도 등에서 시작됐는데 이런 제도가 확산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보호와 재활, 정당한 대가 지급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직업재활시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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