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최소 330명 사망 추정… 한 달 넘긴 칠레는 2300명 부상
경제 불평등 등 고질적 문제 탓, 직접 행동 방식이 정치 수단화
“(지난달 17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40일간 이어지면서 모두 지치고 좌절하기 시작했고 통제불능 상태에 접어들었다. (레바논) 군은 이제 살얼음판을 걷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26일 AP통신은 파디아 키완 레바논 세인트조지프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석을 전하며 경제난으로 발발한 레바논 시위와 관련해 중립을 표방하던 보안군이 이제는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통신은 종파를 뛰어넘어 비교적 평화로운 시위 양상을 띠던 레바논 시위가 반정부 시위대와 헤즈볼라 지지자가 격렬하게 충돌한 24일을 기점으로 위험 국면을 맞았다고 전했다. 그간 레바논 시위는 이라크가 비슷한 시위를 유혈 진압한 것과 대조돼 평화적인 사례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전 세계를 뒤덮은 시위의 물결이 장기화하면서 인명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피해 규모는 물론 어느 한 곳도 사태 해결의 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경제난과 정부의 부정부패로 지난달 초 시작된 이라크 반정부 시위사태 이후 이라크군과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최소 330여명이 사망했다고 중동 전문매체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추정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도 25일 기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이라크 당국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최소 146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이라크 보안군은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근접 거리에서 무차별 사격하거나, 도주하는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하철 요금 인상에 항의해 지난달 중순 시작된 칠레 시위 역시 한 달이 훌쩍 넘게 지속되면서 보안군의 인권 유린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칠레인권연구소(INDH)에 따르면 22일 기준 최소 23명이 숨지고 구금된 인원은 7,000명에 이른다. 부상자는 2,300여명으로, 이들 중 1,400여명이 총상을 입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다친 경찰도 1,700명이나 된다. 이와 관련해 앰네스티는 “경찰이 시위대를 처벌할 의도로 불필요하고 과도한 무력 진압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전역에 퍼진 거리 시위와 이로 인한 인권 침해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시위의 촉발점은 다르지만 극심한 불평등과 재정 압박 등의 구조적 문제가 배경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일련의 시위를 분석한 ‘불타는 거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발을 막을 체계적인 대응도, 위기를 초래한 이들에 대한 처벌도 없는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경제적 불평등과 국가 억압, 성차별 등에 대한 저항이 커지면서 정치 양극화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앞으로 맞이할 세계의 거리는 지난 10년보다 더 가연성이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특히 정보통신(IT) 도구를 활용하는 젊은 계층이 공통적으로 기존 정치에 반기를 든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연구기관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시위를 연구하는 리처드 영은 “홍콩, 칠레 등지의 시위는 일회성이 아니다”며 “기존 정치체제가 반응하지 않는 데 염증을 느낀 이들이 직접적 행동을 하나의 주류 정치 수단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WSJ에 따르면 일면식이 없던 이들이 와츠앱이나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규모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의 시위 방식을 보고 배울 수도 있게 됐다. 홍콩 시위에 등장한 레이저 포인터가 뒤이어 칠레 시위 현장에도 나타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마누엘 카스텔 미 USC대 교수는 “권위의 위기도, 기술 발달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젊은 계층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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