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수라바야 잠수함 기지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한국일보>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와 사지가 단단한 철제 장비에 부딪히거나 긁히기 일쑤인 비좁은 공간. 장정 4명이 각종 배선이 얽힌 복잡한 틈새에 머리를 맞대고 밸브 하나하나 위치와 기능을 밑줄 그어가며 익히고 있었다. 어뢰발사관이 들어찬 선수 부위에 있는 밸브만 500여개. 간종선(43) ㈜대우조선해양 부장은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는 잠수함은 밸브 하나만 잘못 작동시켜도 안으로 물이 들어오거나 운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수함 전체 밸브 수는 1,200여개, 샅샅이 암기하고 지겹게 되풀이해 몸에 배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두 번째 도시인 동부자바주(州) 주도 수라바야에 인도네시아 해군 2함대(옛 동부함대)가 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한국이 첫 수출한 재래식 디젤 잠수함 세 척이 모두 정박한 곳이다. 2011년 당시 수주는 승용차 수출 7만대와 맞먹는 국내 방산 수출 역사상 최고가(1조2,000억원) 계약으로 기록됐다. 1, 2번함은 해군 기지에, 올 4월 진수한 3번함은 기지 내 국영 조선소 ㈜PAL(PT. PAL) 공장에 있다. 암벽(정박) 시운전이 한창인 3번함에 승선했다.
선폭(최대 폭)은 6m지만 각종 설비로 운신이 불편한 전장 61m, 40명 정원의 3번함 내부 곳곳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이들로 가득했다. 엔진과 배선을 점검하고 계기판 작동 상태를 살피는 현지인들의 손놀림은 아직 둔해 보였으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적도의 태양이 달군 잠수함 내부는 배움의 열기까지 더해져 숨이 가빴다.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방위산업(방산) 협력의 최전방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3번함은 내년 1월 해상 시운전을 앞두고 있다. 기지 인근은 수심이 얕아 올 연말 이틀에 걸쳐 자바섬 최동단 바뉴왕이(banyuwangi)로 이동한 뒤, 6개월 이상 수심 300~700m인 발리섬 북쪽 바다를 오가며 시운전을 하게 된다. 막바지 암벽 시운전이 그만큼 부산할 수밖에 없다. 한치 오차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추가 인력을 파견한 ㈜대우조선해양은 해상 시운전 요원도 더 불러올 참이다.
해양 강국을 꿈꾸는 1만7,000여개의 섬 국가 인도네시아는 특히 3번함에 대한 애정이 깊다. 잠수함은 5개 부분(섹션)을 각각 만든 뒤 조립하는 방식인데, 완제품을 한국에서 들여온 1, 2번함과 달리 3번함은 현지 ㈜PAL 공장에서 진행된 조립 공정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해서다. 잠수함 자체 건조로 가는 긴 여정에 놓인 능선 하나를 넘은 셈이다. 내친 김에 인도네시아는 3번함 진수식에 맞춰 우리나라와 잠수함 세 척 추가 계약(1조1,600억원)을 맺기로 했다. 긴 세월 쌓아온 양국 간 신뢰, 우리의 성심성의 노력,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자체 건조 염원이 어우러진 결과다.
사실 디젤 잠수함 도입 시기만 놓고 보면 인도네시아(1984년)가 우리(1993년)보다 9년이나 빠르다. 기종은 독일 하데베(HDW)사의 209잠수함으로 같으나 실제 위협이 되는 잠재적 적이 있느냐(우리나라), 없느냐(인도네시아)로 갈리면서 급격한 수준 차이를 만들었다.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기술이 제자리에 머무는 사이, 우리는 209잠수함(장보고급) 자체 건조와 공기불필요추진기(AIPㆍAir Independent Propulsion)를 탑재해 잠항 시간을 늘린 독일 214잠수함의 개량(손원일급)을 넘어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한 3,300톤 도산안창호급 1번함이 시험 운항 중이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잠수함은 1,200톤급 209잠수함을 대우조선해양이 1,400톤급으로 개조한 것이다.
양국 잠수함 우정은 15년 전 시작됐다. 무기 전체를 해체해 완전 복구하는 ‘창 정비’(잠수함은 6년)를 인도네시아는 209잠수함 제조사(HDWㆍ현 TKMS)에 맡겼으나 “비싸기만 하고 수리 전보다 성능이 떨어졌다”는 해군의 불평이 잇따랐다. 세계 두 번째로 209잠수함 자체 건조 능력을 지닌 우리나라에 2004년 기회가 왔다. 현지 잠수함 사업 총괄 서동식(58) ㈜대우조선해양 상무는 “인도네시아 잠수함을 국내에서 창 정비하면서 착실히 쌓은 점수가 잠수함 첫 수출로 이어졌고, 잠수함사령부 협조를 통한 현지인 교육 및 훈련, 관련 자료와 기술 지원 덕에 추가 계약도 성사 직전”이라고 했다. 올해 주(駐)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무관부 창설 45년 만에 잠수함 장교가 무관으로 파견됐다.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배치 목표는 12척이다. 1차 3척은 러시아 독일을 물리치고 따냈고, 2차 3척도 우리가 떼놓은 당상이지만 앞으로 6척은 장담할 수 없다. 전략물자인 함대지 미사일을 수출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선 무기까지 끼어 파는 ‘패키지 딜’ 전략을 구사할 러시아가 위협적인 경쟁자다. 지난 인도네시아 대선 당시 야권 후보로 나서 “우리 기술로 잠수함을 만들어야 한다”고 공약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국방장관의 행보도 변수다. 프라보워 장관 측에 “잠항 시간이 8시간(실제로는 평균 50시간)에 불과한 쓰레기”라는 식의 낭설로 한국 잠수함의 성능을 음해하는 세력도 있다는 후문이다.
다행히 현장에서 한국인들의 일하는 태도를 지켜보며 함께한 현지인 동료들의 믿음은 탄탄하다. 수트리스노(49) ㈜PAL 이사는 “잠수함 자체 건조 꿈을 실현하는 길에 한국은 든든한 동반자”라며 “한국 기업은 우리에게 영감을 줄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해군이 요청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해주고, 기술 이전도 부드럽게 이행하고 있다”고 평했다. 2차 3척 중 두 척은 섹션 두세 개 제작에, 마지막 6번함은 잠수함 기술의 핵심인 선수 섹션을 제외한 모든 섹션 제작과 조립에 인도네시아를 참여시킬 계획이다.
우리나라 민ㆍ관ㆍ군이 의기투합한 잠수함의 인도네시아 수출은 양국 방산 협력의 과거 현재 미래를 투영한다. ㈜PAL 관계자 바람처럼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ㆍ한 걸음, 한 걸음씩).”
수라바야=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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