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이 사실상 물건너갔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법안심사 소위에 국민연금 개편안이 아예 심사 대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정부가 단일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편안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내년 4월이 총선이라 국회의원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당분간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다. 21대 국회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가 인기 없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 적극적일 수 없으니 추진동력이 생길 리가 없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다음 정권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국회의 무책임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708조원(8월 말 현재)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은 2054년에 고갈(국회예산정책처 추산)된다. 이 추산도 지난해 합계출산율(0.98명)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올해 3분기 0.88명까지 떨어진 출산율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고갈 시점은 더 앞당겨질 게 자명하다. 기금이 고갈되면 소득의 9%에 머물고 있는 보험료율이 25%를 넘어가게 된다. 번 돈의 4분의 1 이상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2년간의 국민연금 논의 과정을 돌아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안을 만들었지만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라”며 제동을 걸었고, 정부가 다시 만든 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넘겼다. 다시 경사노위는 3개 안을 내놓았으나 국회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개혁 주체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고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미루는 것은 있는 돈 다 쓰고 다음 세대에 빚만 지우는 것과 진배없다. 정부가 국회 자문기구가 아닌데 단일안도 없이 여러 개의 안을 국회에 던져 놓는 것은 책임회피다. 국민연금 개혁은 지지율 하락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그 이후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순서다. 따라서 정부부터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일피일 개혁을 미루면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충격은 커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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