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82년생 김지영
여전히 사회는 여성에게 부당한 질문을 해
과거엔 “아들도 못 낳는 주제에…”
요즘은 “애도 안 낳고 왜 그러니”
남자한테는 안 하는 질문 왜 하나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이미 설명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인 베스트셀러입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3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원작 소설은 현재까지 17개국에 수출되며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82년생이 아닌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김지영의 삶은 다른 누구, 이전 세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가사, 취업, 명절 등 각자 마음이 더 가는 지점은 조금씩 다르지만요. ‘82년생 김지영’의 무엇이 밀레니얼의 공감을 샀을까요?
◇82년생 이야기? 지금은 뭐 다른가
도논=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김지영과 김지영의 엄마, 할머니가 고통 받은 이유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늘 존재했기 때문이잖아.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차별과 배제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느냐의 차이지. 지금 그 구조가 완전히 타파된 것도 아니야. 엄마랑 할머니 세대가 숨쉬듯이 자연스레 가사노동 독박을 썼다면, 요새는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니 ‘살림과 아이를 내팽개치고 일하러 다니는 이기적인 여자’ 프레임이 작동해. 아빠는 어디 가고.
피곤한 칸트(이하 피칸)= ‘엄마, 할머니 세대랑 너희는 다르잖아, 너흰 혜택 봤잖아’라고 하는 게 납득이 잘 안 가. 김지영이 겪은 이야기는 다 지금 여성들이 살면서 겪은 이야기야. 딸이라서 낙태를 당할 뻔 했다든가, 남자가 반장하고 여자는 부반장하라고 했다든가, 하다못해 취업 때도 여자가 불리하다는 얘기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나오잖아. 2030세대 여자들에게는 여전히 일상적인 사건들인데 남자들이 윗 세대, 혹은 일부 사례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 이걸 윗 세대 이야기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여자와 남자가 단절된 채 이해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누헨지니= 김지영에 공감하는 밀레니얼 남자들은 엄마의 이야기로 먼저 느끼는 것 같아. 아직 김지영의 삶을 공감하기 힘든 게 결혼한 여성이 주변에 별로 없으니까. 사실 남성중심적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엄마가 처해있는 상황이 잘못 됐다는 건 체감을 하거든. 나서서 하지는 않아도 잘못됐다는 건 알지. 솔직히 몸이 편하니까 방관해온 건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난 김지영보다도 김지영 엄마 얘기에 더 공감을 했어.
여의도 불주먹=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라는 게 무 자르듯 확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남자들 입장에선 공감 안될 수밖에 없긴 해. 그렇다고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봐.
도논=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래 여기까진 차별 받았다고 인정해줄게!’ 라면서 ‘엄마세대’와 그 이후를 구분 짓는 건 안이한 행동이야. 그 ‘엄마 세대’라는 건 말 그대로 한 집에 사는 우리들의 엄마라는 거잖아. 우리 세대 가까이에서 상호작용하는 우리 ‘엄마 세대’가 그런 구조 안에 있다면, 같은 여성인 ‘딸 세대’가 그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엄마 세대에서 끝난 얘기다’라고 접근하고 싶겠지만,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과 혐오, 배제라는 건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완벽히 사라지는 것들이 아닌걸. 교묘하게 변용되고 확대된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 김지영도 이전 세대의 이야기로 덮지 말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로서 확장시키는 게 맞다고 봐.
도쎄= 결혼을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생각 안 하는 사람 많잖아. 김지영에서 내가 더 공감되는 지점은 직장과 관련된 문제들이야. 김지영 시어머니가 그러잖아. “네가 벌어봤자 남자보다 못 벌건데 해서 뭐하냐”고. 나는 그 대사가 와 닿았어. 경력단절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마이마이= 책에서도 김지영의 잃어버린 꿈이 나오잖아. 여자 김지영, 엄마 김지영 이전에 가졌던 자신만의 꿈이 있었을 거야. 실제로 내 주변에도 현실에 쫓기느라 꿈을 잃어버린 분들이 많거든. 우리 고모는 유능한 프로그래머였는데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서 직장을 포기하셨어. 그런데 딱히 고모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한 선배는 스타트업을 꾸리고 싶었지만 남편 집안에서 ‘애는 어떻게 볼 거냐’라며 반대하셨고. 결국 아이를 보며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지금은 꿈과는 아무 상관도 없던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
도논= 물론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리는 비혼을 선언하기도 하고, 결혼은 하더라도 애를 안 낳겠다고 말하기도 해. 그런데 그 선택지는 여전히 윗 세대의 압박을 견뎌내야 고수할 수 있어. “아들도 못 낳는 주제에”가 “너는 애도 안 낳고 대체 왜 그러니”로 전환된 거지. 여성들은 항상 부당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삶을 살아. 스트레스가 쌓이고, ‘내가 정말 이상한 여자인가’ 의심하게 돼. 이런 상황에서 “옛날보단 낫지”라는 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야.
◇김지영이 바꿔놓은 것들
피칸= 책 나오기 전에도 페미니즘은 있었지. 그렇지만 그때는 밖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면 검열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거든? 그런데 ‘김지영’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널리 읽히면서 그런 게 사라졌어. 여성들이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 더 나아가 ‘김지영’이라는 키워드가 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화선이 됐다고 봐. ‘김지영’을 읽은 한 독자가 남긴 “누군가에게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함을 토로하면 예민하다는 핀잔만 들어왔는데, ‘김지영’ 덕분에 내 고민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라는 평을 본 기억이 나. 그의 말처럼 책이 구심점이 돼 여성들이 하나 둘 자신의 삶을 얘기하게 됐고, 하나의 큰 흐름으로 사회에 가시화됐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마이마이= ‘김지영’ 덕분에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생각에 백 번 공감해. 특히 대학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주목하고 싶어. 우리 학교에서도 ‘김지영’을 주제로 한 학회나 세미나도 여러 번 열렸거든. 학생회 별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동아리들도 여러 행사를 열고 있어.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생각이야.
도논= 우리 학교에 연극회가 있는데 거기서 ‘김지영’을 극으로 올린 적이 있거든.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음에 연출자한테 같은 과 남학생들이 메시지를 보냈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연극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고, 이런 극을 올려줘서 고맙다는 얘기들이었어. 대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의 장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김지영’이라는 코드가 유의미하다고 봐.
외거노비= 난 예대를 다니는데, ‘김지영’이 나오고 나서 학교에서 젠더 주제의 작품이 많이 늘어났어. 예전에는 여성 학우들도 젠더에 관한 주제를 꺼려했거든. 그런데 ‘김지영’이 나오고 나서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님들까지도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더라. 젠더 문제를 주제로 하는 전시회도 많이 열게 됐어. 이제는 젠더 문제가 대학가의 중심 주제로 급부상한 것 같아.
◇밀레니얼 세대에서 페미니즘이 발화한 이유
할많하않= 미시적인 개인들이 점이라면 강남역(강남역 살인사건), 김지영과 같은 매개체가 그 점들을 잇는 응고제가 된 것 같아. 그게 우리 세대에서 페미니즘이 발화한 이유가 아닐까.
배테= 우리 세대가 자라난 환경에 여성 혐오적인 언어가 많았던 게 원인이라고 생각해. 김치녀, 된장녀, 개념녀, 김여사 이런 식으로 여자들을 라벨링했잖아. 이런 가시적인 폭력과 혐오를 겪으면서 여성 혐오를 더 체감하게 됐다고 봐.
도논= 엄마, 할머니 세대에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설칠’ 수 있는 싹을 원천적으로 잘라버렸다면, 우리 세대에는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나 사회 진출 빈도가 높아지니 ‘설치는 여자’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 같아. 갖가지 별칭을 가져다 붙이잖아.
피칸= 여성들의 의식이 높아졌는데도 라벨링을 하는 게 늘어났어. 뭘 해도 다 ‘~녀’가 됐잖아. 밀레니얼 세대에 페미니즘이 확장된 건 맞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해. 우리 이전 세대 여성들도 계속 화두를 던지면서 호주제 같은 걸 많이 바꿔왔으니 우리 세대만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어. 우리 세대의 변화는 여성들이 교육을 많이 받게 된 것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 동등한 교육을 받아도 사회 나오면 경력단절이나 차별을 겪게 되니 괴리를 강하게 느끼게 된 거지.
도쎄= 페미니즘 이슈가 너무 자극적인 부분에만 조명되는 것 같아. 언론이나 커뮤니티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미러링(여성 혐오를 남성 혐오로 되갚아주는 방식)에 집중하지만 페미니즘 안에서도 동일노동ㆍ동일임금 청원을 열심히 하는 분도 있고, 시간과 돈을 들여서 사이버 범죄를 근절하려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데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 없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극적인 부분만 과하게 집중하는 느낌이 들어. 그것만 페미니즘이 아닌데 말이지. 목소리를 내도 우리 사회가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배테= 분명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아. 동일노동ㆍ동일임금, 몰카 이런 거는 지성인이면 다 동의하는 내용이잖아. 이런 부분들이 더 논의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돼야 할 것 같아.
할많하않= 초등학생 애들부터 성별로 따로 논다는 말도 나오잖아. 우리 때처럼 어색해서 같이 안 노는 게 아니라 적대시 한다더라. 어린 친구들이 성 차별적 단어의 뜻도 모르면서 재미 삼아 마구 쓰는 경우도 많대. 메갈이다, 한남이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들한테까지 한대.
배테= 성 관련 교육이 너무 없어. 페미니즘은 사실 성평등 운동인데 그걸 그냥 여성 우월주의로 받아들이잖아. 이걸 모른다는 것 자체가 성교육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도논= 난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려면 일단 이 판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어. 일단 “너 메갈이지”에서 벗어나야 얘기가 되는 거 아냐?
피칸= 교육, 제도, 법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너무 느리잖아.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당사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실질적으로 바뀐 게 많이 없는 거야. 느린 제도 변화를 기다리다 못한 여성들이 그 사이에 뭐라도 하고 싶으니까 목소리를 내는 거지. 그런데 이 공론장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과격하다고 말하는 거잖아.
마이마이= 과격한 수단의 필요성과 별개로 그 의도가 곡해 당하는 게 아쉬워. 반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논란이 되는 페미니스트들의 행위를 가져다 쓰고 있잖아.
피칸= 설득의 언어를 사용할 때는 아무도 듣지 않았어. 소리를 지르니깐 얘기가 되기 시작한 거야. 이제 와서 진정하라는 건 ‘우리 불편하니깐 낮춰’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
도논= “페미니스트들, 진정해”가 아니라 “우리 같이 진정 좀 하자”고 얘기했으면 좋겠어.
◇결혼ㆍ육아ㆍ명절, 언제까지 ‘삶의 단절’이어야 하나
마이마이= 난 결혼을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단절’이 되는 건 원치 않아.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 모두 자기만의 꿈이 있고 생활이 있는 거잖아. 각자의 삶과 꿈을 존중하고,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그걸 해치지 않겠다는 큰 전제 위에서 결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결혼에서 생기는 의무나 책임을 똑같이 나눠가져야지. 결혼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건데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경력이 단절되고 희생되는 건 원치 않아.
배테= 난 사실 ‘김지영’에서 가장 공감을 크게 느낀 부분이 명절이야. 82년생이었던 김지영이 겪고 있는 현실이 나와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다수의 사람들이 ‘과거보다 명절이 좋아졌다, 결혼하기 좋아졌다’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 어렸을 때부터 우린 여자만 음식하고, 남자만 제사 드리는 게 일반적이었단 말이야. 여전히 이런 집안들이 내 주변만 둘러봐도 많고. 불합리를 여러 번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그냥 당연하게 유지해왔으니까 내 의문들 자체를 불편해하더라고.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려 하면 불편해하는 어른들이 생기고, 그걸 또 듣기 싫으니까 여자들이 그냥 자기가 하고 만다고 넘어가는 이 구조가 반복 중이야. 난 이게 너무 싫어서 명절에 아무데도 안 가. 그냥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이런 가족들이 너무 많은데 우린 안 그렇다며 편해졌다는 말을 하는 건 구조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도논= 일단 나는 지금으로선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자신 없어. 나와 가치관이 일치하는 운명의 단짝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매일의 사건들이 내게 그 근거가 돼. 요즘 노키즈존이 이슈잖아. 이런 걸 보면 국가적 지원을 떠나서 사람들 인식부터가 육아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는 절대 엄마나 아빠가 혼자 키울 수 없어.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잖아.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엔 그런 연대감을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 낮은 출생률이 국가적 문제라고들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정말 출산부터 육아까지의 부담을 나눠질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세대를 거듭할수록 육아에 대한 의식은 철저히 더 개인화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정리=차승윤 인턴기자
참여=김민준, 박형기, 이정원, 이주현, 임태형, 전혜원, 정해주, 한채영 인턴기자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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