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 유ㆍ무죄 평결…법적 구속력 없어
안인득, 1심 사형 선고…배심원 만장일치 유죄 평결
“안인득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정의가 살아있다고 선언해 주십시오.”
4월 경남 진주에서 방화와 살인으로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사건, 모두 기억하시나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질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안인득(42)이 27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앞서 검찰은 창원지법 형사4부(부장 이헌) 심리로 열린 이날 국민참여재판에서 안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9명의 배심원단도 이날 만장일치로 안씨를 유죄라고 평결했습니다. 배심원 8명은 사형을, 나머지 1명은 무기징역의 양형 의견을 제시했고, 재판부가 배심원단 의견을 참고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라고 주장하지만, 범행의 경위 및 전후 행동 등을 보면 심신미약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등 피해가 중대하다”고 사형 선고 사유를 밝혔습니다.
애초 안인득 사건은 7월 23일 창원지법 진주지원에서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씨가 재판을 앞두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전담재판부가 있는 창원지법에서 4개월이 지난 25일에서야 열리게 됐습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만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ㆍ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로, 2008년 1월 처음 도입됐습니다. 배심원단이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ㆍ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량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배심원단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피고인의 유ㆍ무죄가 결정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배심원이 평결을 내리고 법관이 그 평결을 따르는 ‘배심제’와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참심원이 법관과 토의하는 ‘참심제’를 적절하게 혼합한 형태라고 합니다.
우선 배심원들이 법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건 아닙니다. 배심원단은 원칙적으로 법관의 관여 없이 평의를 진행한 후 만장일치로 평결을 해야 하는데, 만장일치가 안 될 경우 법관의 의견을 들은 뒤 다수결로 평결할 수 있습니다. 또 법관과 함께 양형을 두고 토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배심원들은 법관과 함께 양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양형 의견을 밝힐 뿐입니다.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큰 차이입니다. 이 때문에 법관들이 배심원 평결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원칙적으로 매일 재판을 진행해 1∼3일 사이 비교적 단기간에 마무리됩니다. 보통의 형사사건 재판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기간 측면에서는 효율적으로 보이죠? 안인득 사건도 재판 3일 만에 구형과 선고가 모두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기준 국민참여재판 시행률은 0.9%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효율적인데 왜 다들 국민참여재판을 안 하는 거냐고요? 유ㆍ불리를 함부로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간혹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국민 법 감정에 따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에서도 일부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일부는 거절했습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전국민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죠? 고유정도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았고,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성수도 거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임대료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둔기를 휘둘러 건물주를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본가 궁중족발 사장’ 김모씨는 지난해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받아 검찰이 적용한 살인미수 혐의를 벗었었죠.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게 될까요? 통상적인 형사재판에서 유죄 선고가 예상될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받아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실제로 안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점을 두고서도 배심원이 자신의 억울함이나 심신미약을 인정해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고요.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는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형량을 다투는 재판이 아닌,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에서 유죄 가능성이 높아 보일 때 국민참여재판을 하면 다른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며 “사실관계가 애매한 사안에서는 활용해볼 만한 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형량이 낮다는 기존의 인식 때문에 배심원단이 법관보다 형량을 높게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김 변호사는 “배심원 판단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형량 측면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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