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국민청원 게시자 “17년 만에 문제제기” 주장
친족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때문에 어려움 존재
수십 년 전 아버지에게 당한 폭행과 강제추행 피해를 고백하며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앞서 6월에도 친족 성폭력 범죄 피해 관련 청원이 올라왔지만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아버지란 이름의 성폭력 가해자를 벌해주십시오’라는 청원이 청원 게시판에 등장한 건 28일이다. 청원자는 “제게 집은 ‘감옥’이었고, 교도관인 아버지는 저희 세 자매를 재소자 다루듯 했다”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손찌검은 예사였고, 방 안에 감금했다. 이유는 저희 세 자매가 가출과 비행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는데, 저희가 가출을 하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며 “12살 무렵 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살기 위해 집을 나가셨고, 그때부터 저와 언니들은 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청원자는 경찰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들은 경찰들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했다. 언니들 역시 저처럼 지난 20여 년간 아버지에게 당했던 폭행과 성폭력의 기억을 끌어안은 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명예퇴직 후 연금을 받으며 재혼해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다만 이 청원자가 게시한 내용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원자는 “20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변한 것이 없다”며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도 촉구했다. 그는 “저처럼 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죽을 각오로 법에 호소하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6월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친족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온 바 있다. 당시 청원자는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졌으나, 해당 법은 2011년부터 시행되었기에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은 소급적용 되지 않는다”며 “친족에 대한 (성범죄 관련) 법률 강화와 더불어 친족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이 청원은 ‘20만 명 동의’에 한참 못 미치는 4,512명 동의에 그쳐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
친족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잇단 청원의 쟁점은 뭘까. 전문가는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후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근거로 진술밖에 없는 현실 등이 한계로 작용한다는 점을 꼽는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가해자의 행위는 끝나더라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피해자에게 좌절감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해 친족에게서 벗어나기 전까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친족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날 제기된 국민청원 글쓴이도 “19살에 한국을 떠났다가 17년 만에 죽을 각오로 간절히 청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임 연구원은 “친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본 경우 성인이 되기까지, 심지어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 청원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빠르게 퍼지며 주목받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기준 1,488명이 동의했다. 청원을 접한 누리꾼들은 “친족 성폭력 범죄는 더 큰 처벌이 필요하다(m****)”, “공소시효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 등을 나누며 공분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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