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北 무력시위 요청 의혹 재조명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북미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나 원내대표가 7월 방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내년 4월) 총선 직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상회담 취지도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말이 안 된다”며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총풍사건’도 언급됐습니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알려지고 비판이 쏟아지자 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문제제기’라고 감쌌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승리를 위해 북한 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했던 한나라당을 전신으로 둔 정당답다”며 “나 원내대표 발언은 본질적으로 총풍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한반도 평화는 국민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자 국가적 숙제다. 그보다 더 중한 것이 당리당략이고 자당의 선거 승리냐”며 “과거 선거 승리를 위해 북풍, 총풍마저 서슴지 않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고 쓴소리를 냈습니다. 최경환 대안신당 수석대변인도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총풍사건과 다를 게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총풍사건이 뭐길래 다들 나 원내대표 비판에 총풍사건을 언급하는 걸까요?
총풍사건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정부 청와대와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논란입니다. 남북관계 긴장도가 올라가면 보수 진영이 결집해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정치공작에 나섰다는 의혹이었죠.
지난해 8월 개봉한 영화 ‘공작’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 같은데요. 영화 중후반부 대선을 앞두고 남측 인사가 북측 인사를 찾아가 보수 진영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죠.
총풍사건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의혹만 무성했던 ‘북풍(북한 변수)’ 공작이 실제로 드러난 사건이라 큰 파장을 일으켰죠. 97년 대선에선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면서 총풍사건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선 승리를 위한 정치공작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파문이 컸죠.
결국 청와대 행정관 등 관련자들은 북한에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총풍 3인방’으로 불리는 오모 전 청와대 행정관과 사업가 등 3명은 전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무력시위 요청을 인정한 1심과는 달리 2심 재판부는 “대선 운동이 과열되던 상황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대선 관련 동향을 알아보려는 시도를 했다”면서도 “무력시위 요청에 대한 사전 모의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오 전 행정관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았고, 다른 피고인 2명은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죠. 검찰이 불복해 상고했지만, 2003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2심이 그대로 확정되면서 총풍사건은 실체가 불분명한 사건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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