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ㆍ檢 ‘백원우 특감반원’ 사망 배경 놓고도 충돌
靑, 강압수사 가능성 시사… 檢, 서초서 압수수색해 고인 휴대폰 확보
청와대와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징후가 뚜렷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 때만해도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아프다고만 할 순 없는 일”이라며 검찰 수사가 결과적으로 권력 내부의 기강을 다잡게 하는 예방주사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유재수 감찰 무마’ ‘김기현 하명 수사’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도 “검찰은 검찰의 역할을 하는 것”이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급반전하며 검찰에 대한 불신이 폭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이 조 전 장관을 어떻게든 엮거나 검찰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검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소환을 앞두고 1일 극단적 선택을 한 A 검찰수사관의 유류품이 보관된 서울 서초경찰서를 2일 압수수색해 A 수사관의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금융위원회 인사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을 향해 전혀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관련해 직접적 비판을 가한 건 이례적이다.
구체적으로 유 전 부시장이 정권 핵심인사들과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통해 인사 문제를 논의한 내용을 서울동부지검이 파악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가 자체 감찰을 벌인 결과 문제의 단체 대화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가 된 텔레그램 대화방은 검찰이 유 전 부시장의 인사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핵심 근거다.
앞서 유 전 부시장이 2017년 10월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천경득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김경수 경남지사 등과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금융위 고위층 인사에 대해 논의한 정황을 확보했다는 검찰 발 보도가 잇따랐지만, 청와대는 근거 없는 보도라는 입장이다.
여권은 A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과 관련해서도 “누구보다 검찰이 잘 알지 않겠냐”며 검찰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여권은 A 수사관이 별건 수사의 희생양이 됐다고 의심하면서 메모 형식의 유서가 검찰을 통해 흘러나온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검찰은 A 수사관이 “윤석열 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지만, 2일 사정기관 관계자 등의 설명은 달랐다. A 수사관은 “윤석열 총장께 면목이 없지만,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랍니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주십시오”라는 글만 남겼다고 한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에게 미안하단 말은 이 사건 전체를 규정해 버리는 것”이라며 “(검찰이) 하나도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무소불위의 권력이 돼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서울동부지검 소환 조사 직후인) 지난달 24일 고인(A 수사관)은 또다시 (민정수석실에서 함께 근무한) B 행정관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내가 힘들어질 것 같다. 그런 부분은 내가 감당해야 할 것 같다. B 행정관과 상관없고, 제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강압 수사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윤 총장의 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법ㆍ제도적 개혁은 법무부가 하는 것이지만, 검찰의 조직 문화와 수사관행을 바꾸는 것은 검찰 스스로 하는 것이다. 검찰 내부 개혁에 대해선 윤 총장을 신뢰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윤 총장에 대한 신뢰를 거듭 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검찰 내부 개혁의 핵심으로 제시한 공정한 수사 관행, 특히 인권보호 수사의 원칙을 윤 총장이 깬 이상 문 대통령도 더는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 것이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전망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검찰이 조 전 장관을 향해 겨누고 있는 12가지 혐의에 대한 입증이 여의치 않자 정권 실세들을 물고 늘어지며 다시 한번 ‘범 몰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사실을 흘리고 별건 수사로 압박하는 검찰 관행을 더는 묵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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