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경유차 등록대수가 처음으로 1,000만대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 100대 중 43대는 경유차다. 딱 20년 전인 1999년 경유차 비중이 29%였음을 생각해 보면 무서운 증가 속도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애초에 경유차가 별로 없거나 빠른 속도로 경유차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에 경유차가 차고 넘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정부가 경유차 공급을 조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경유 승용차 판매를 허용했고,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서 경유차가 친환경차라고 선전했다. 둘째, 경유차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증가했다. 너도 나도 힘 좋고 신나게 달리는 레저용 경유차(SUV)를 구매했다. 소득 증가에 따라 고급스런 외국산 대형 경유승용차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경유차 천국에서 경유차 지옥으로 바뀌었다. 인구의 반인 2,5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미세먼지로 신음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수도권에서 국내 요인 미세먼지 기여율 1위는 단연 경유차다. 2위가 건설기계인데, 이 역시 경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둘을 합치면 50%가 넘어간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때에 따라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는 ‘변수’지만, 우리 동네를 운행하는 경유차는 늘 피해를 야기하는 ‘상수’다. 미취학 아동을 태우고 다니는 어린이집ㆍ유치원ㆍ학원용 경유 승합차가 정작 아이들의 얼굴을 향해 배출가스를 내뿜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많은 학술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노약자와 어린이 등 환경약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인지능력과 운동기록, 노동생산성을 악화시킨다. 최근의 국내 연구는 미세먼지 농도가 중학교 학생들의 시험성적까지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곳에 위치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만큼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이는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피해를 넘어 학업능력과 생산성, 평생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경유세를 인상해 경유차 운행비를 비싸게 만드는 방안이 가장 비용효과적이다. 세금을 달리 적용해 휘발유 대 경유 가격 비율을 100대 85로 고정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경유차 배기가스 조작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미세먼지는 한국인의 제1 공적(公賊)이 됐다. 정부가 경유에 부과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50원 올리면 두 유종 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이르게 되고, 당장 경유 신차의 판매량은 급감할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상대적으로 비싼 경유차를 구매하는 이익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값싼 경유로 인해 누렸던 유지비 절감효과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다 올릴 필요도 없다. 3년에 걸쳐 조금씩 인상하면 된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였다는 일관된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경유를 비싸게 만든다고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의 주범인 대형 트럭은 정부로부터 유가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경윳값을 올려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30여만 대의 소ㆍ중ㆍ대형 트럭이 등록돼 있다. 이들이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잡기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액화석유가스(LPG)와 액화천연가스(LNG), 전기 트럭 등 기술적 대안이 급속히 상용화되고 있다. 유가보조금을 지급할 바에는 경유 트럭 운전자에게 보조금을 충분히 지급해 친환경 트럭으로의 교체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류운송 시장의 불공평성을 해소해 물류 운전자들이 적정 운임을 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속히 만들어야 한다. 이로 인해 비싸진 물건 값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부담한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송 부문의 미세먼지 배출은 다양한 정책수단의 총합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경유세 정상화는 그 효과적인 출발점이다. 경유세를 올린다고 경유차 미세먼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지만, 경유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해결은 기대난망이다. 마침 지난 10월 경유차 등록대수는 8월에 비해 3만여대 감소해 다시 900만대로 내려왔다. 이 통계가 경유차 퇴출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홍종호ㆍ서울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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