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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헥시트 공포...홍콩 ‘금융허브 40년’ 종말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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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헥시트 공포...홍콩 ‘금융허브 40년’ 종말 오나

입력
2019.12.0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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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화 올해 H지수. 송정근 기자
홍콩 사태화 올해 H지수. 송정근 기자

홍콩 시위로 인한 정부와 시민간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1980년대 이후 40여년간 ‘국제 금융허브’로서 입지를 다졌던 홍콩의 위상도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시위 여파로 홍콩 경제는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미국이 그간 홍콩에 부여하던 ‘특수 지위’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자칫 국제도시로서의 제도적 기반마저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 해도, 수십년간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던 홍콩이 그 기능을 잃을 경우 한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은 막대할 전망이다.

 ◇경기 침체에 특수 지위 박탈 위기까지 

5일 금융권과 외신에 따르면, 홍콩 경제는 올해 들어 급격한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지난 2일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1.3% 감소할 전망”이라며, 시위 장기화와 미중 무역전쟁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해외 관광객이 줄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가 당장 홍콩 금융가까지 위협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홍콩 탈출을 뜻하는 이른바 ‘헥시트(HKExitㆍ홍콩+엑시트)’ 현상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금융 종사자들이 홍콩 근무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헤지펀드 등 일부 자금이 싱가포르나 도쿄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홍콩의 부동산 시장으로 헥시트 영향이 확산될 경우, 그 여파가 다수 부동산 기업이 상장된 홍콩 증시로 번져 외국 자금 이탈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최근에는 그간 미국이 홍콩에 보장해 온 특수 지위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미국 상ㆍ하원을 통과해 2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홍콩 인권법’은 미국 국무부가 홍콩의 특수 지위를 유지할 지 매년 재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인 1992년 제정된 홍콩 정책법에 따라 홍콩은 미국의 비자 발급, 법률 집행, 교역과 투자 등에 있어 중국 본토와는 별도의 특수 지위를 누려 왔다. 이것이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홍콩이 위상을 다졌던 원동력이었다. 스티브 창 런던대 중국연구소장은 “특수 지위 철회는 ‘핵 옵션’이고 우리가 아는 홍콩의 종말이다”라고 강조했다.

홍콩 경제 성장률. 송정근 기자
홍콩 경제 성장률. 송정근 기자

 ◇홍콩 위상 추락은 한국에도 직격탄 

금융허브 홍콩이 무너지는 건 세계 금융시장에도 ‘공포 시나리오’다. 세계 100대 은행 중 70개가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다.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SC) 등은 수입의 4분의1 이상을 홍콩에 의존한다. 이들 은행이 현실적으로 아시아권에서 홍콩의 대안을 찾기 쉽지 않아, 결국 홍콩의 기능 마비는 아시아 금융시장을 넘어 글로벌 금융사 불안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미국이 홍콩의 특수 지위를 제한할 경우, 미국 기업에도 악재다. 지난해 미국은 전체 교역 대상 가운데 홍콩에서 최대 무역흑자(311억달러)를 거뒀다. 미 국무부가 추산한 홍콩 내 미국 시민 거주자는 8만5,000여명, 홍콩에 지부를 운영 중인 미국 기업도 1,300개에 이른다. 홍콩 미국상공회의소는 “특수 지위 변경 논의는 홍콩 내 미국 무역 및 투자를 냉각시킬 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에서 홍콩이 누리던 신뢰받는 지위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의 추락은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대 홍콩 수출 규모는 미국, 중국, 베트남에 이어 4번째로 크고, 이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올해 1~10월 홍콩 수출액은 작년보다 33% 급감했다.

국내 금융사에서 인기 높은 주가연계증권(ELS)은 변동성 높은 기초지수로 홍콩 H지수를 포함한다. 현재 H지수는 주로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등락 중이지만, 만약 홍콩의 위상 추락으로 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지수 폭락과 함께 국내 ELS에도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중국의 ‘홍콩 힘 빼기’ 전략 주목 

국제 금융가는 중국 정부의 장기적인 의도를 주목하고 있다. 얼마간 타격을 감수하고라도 결국 홍콩의 금융허브 위상을 줄이려는 과정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 8월 상하이와 선전 등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10월에는 중국 내 금융기업의 해외 소유권을 제한하던 규정을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미국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사용하고 있는 홍콩의 금융 주권이 사실상 미국에 있다고 보고 장기적으로 이를 되찾아오길 원한다”며 “상황에 따라선 홍콩 증시를 중국 내륙으로 통합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단기간에 홍콩의 위상이 급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중국으로 유입된 해외직접투자액 약 1,007억달러 가운데 3분의2가 홍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또 홍콩 증시에는 중국 경제를 지탱하는 국영기업 다수가 상장돼 있는데, 아직 중국 내륙 시장만으로는 외부 자금 조달에 한계가 있다.

마크 오스틴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대표는 지난 29일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의 본토 시장 개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홍콩은 중국이 외부 세계와 통하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중국의 대표 기술기업 알리바바가 홍콩 증시에 상장한 것도 아직은 홍콩 시장의 안정성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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