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 유산슬, 그리고 안나.
요즘 대중문화를 달구는 화제의 인물들이다. 각각 음원 사이트, TV, 영화관에서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흥행 방식. 스타라면 흔히 택하는 방식을 모두 벗어났다.
백예린은 ‘공장형 K팝’ 일변도였던 음악 시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통로를 찾았다. 유재석은 ‘트로트 샛별’ 유산슬로 거듭나 ‘인생 2막’의 희망을 보여주고, ‘겨울왕국2’의 안나는 평범한 여성이 세상의 주인공임을 외치고 있다. 이들 ‘평범한 영웅’이 올 연말 대중문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록밴드처럼… ‘공장형 K팝’ 거부한 백예린
92만2,400명. 백예린이 지난 10일 새 앨범 ‘에브리 레터 아이 센트 유’를 공개했다. 그날 하루 멜론에서 수록곡 ‘스퀘어’를 들은 이용자 수다. K팝 아이돌도 아닌데다 남성보다 팬덤이 약하다는 여성 가수가 보여주기 힘든, 엄청난 폭발력이었다.
‘스퀘어’의 성공 방정식도 특이하다. 백예린은 2017년부터 공연장에서 ‘스퀘어’를 틈틈이 불렀다. 팬들 사이에서 이 곡 좋다고,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돌았다. 공연에서 ‘스퀘어’를 부른 라이브 영상은 조회 수 1,000만을 훌쩍 넘겼다. 백예린은 미리 부른 이 노래를, 관객 반응을 봐 가며 다듬은 뒤 앨범에 실었다. 신비주의에 기반한 티저 전략을 쓰는 K팝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록밴드의 앨범 작업 방식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백예린은 대형 K팝 기획사 출신이다. 2012년 JYP엔터테인먼트(JYP)에서 듀오 피프티앤드로 데뷔했다. 그런데 오히려 주류와는 정반대 방식을 택했다. 2년 전부터는 TV에도 안 나간다. 다듬어진 전자 음악에 익숙할 법도 한데, 잡음이 살짝 섞인 빈티지한 소리를 내세운다. 이번 앨범을 프로듀싱한 구름은 “1950년대 재즈 가수 느낌을 내기 위해 진공관 마이크로 녹음했다”고 전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백예린의 인기는 수상한 마케팅으로 곡을 인위적으로 띄우는, 불공정한 음악 시장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스물둘인 백예린의 미래가 주목받는 이유다.
◇위기의 유재석이 보여준 ‘인생 2모작’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한 유재석의 선택도 화제다. 최고의 진행자이자 코미디언이지만, 트로트에서만큼은 신출내기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먹는 유산슬처럼 트로트에서 값어치 있는 가수’가 되겠다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발상도 신선했다. 반짝이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가 누구보다 ‘촌스럽게’ 노래하는 유재석, 아니 유산슬의 모습에 시청자는 환호했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깔끔하고 정돈된 진행으로 고착화되어가던 유재석의 기존 이미지를 깼고, 스타로서 방송에서 그가 지난 권력까지 내려놨다는 점에서 놀라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이를 ‘리셋의 카타르시스’라 불렀다.
그 덕에 유산슬은 이제 주목받는 트로트 신동이다. 트로트의 본고장 고속도로 휴게소부터 중년의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KBS ‘아침마당’까지, 종횡무진이다. 목소리가 매력적이라며 김연자, 태진아 같은 트로트계 대선배들도 유산슬의 데뷔를 도왔다.
그 덕에 유산슬은 ‘인생 2막’을 고심하는 중년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이제 더 이상 이룰 것 없어 뵈는 유재석이 유산슬로서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100세 시대를 맞아 다른 노년을 꿈꿔야 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유산슬의 성공의 자신의 성공 같아 보인다.
◇안나, 평범한 여성이 세상의 주인공
‘겨울왕국2’에서 위기에 빠진 아렌델 왕국을 구원한 건 안나였다. 엘사가 눈과 얼음을 만드는 초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면, 동생 안나는 포용력으로 세상을 구한다. 1편에서 안나는 철없는 동생이었지만, 2편에선 언니를 챙기며 실의에 빠진 이들을 다독인다.
예상을 깨고 ‘겨울왕국2’에서 부각되는 인물은 엘사가 아니라 안나다. 평범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셈이다. 안나 캐릭터를 그린 이현민 디즈니 슈퍼바이저는 “항상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진, 어느 순간 혼자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면 “그 순간 관객들이 안나를 떠올리며 힘을 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특별한 여성이 아닌 평범한 여성을 영웅으로 내세워 공감대의 폭이 더 넓어졌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2편에서 안나는 ‘관계 속에 있는’ 여성을 표현하고, 결혼 고민까지 하면서 현실 여성의 좌충우돌을 보여 준다”며 “정체성 찾기에 바쁜 엘사보다 관객들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덕분인지 ‘겨울왕국2’는 지난 12일 1,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4년 전 개봉한 1편(1029만 관객) 기록을 넘어섰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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