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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ㆍ교재ㆍ학비 없는 IT학교 ‘42서울’… “학생들이 서로 이끌고 평가”

입력
2019.12.17 04:40
수정
2019.12.17 19:4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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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양성을 위해 국내에 전례 없는 파격적 교육 제도를 도입한다. 공부하는 동안 최소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1인당 월 100만원의 학비도 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재단법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내년 2월부터 운영하는 42서울은 교사, 교재, 학비가 없는 혁신적 교육기관이다. 이 곳 학생들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과제와 프로젝트를 서로 논의해 스스로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에게 교사가 되고 평가자가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프랑스의 유명 소프트웨어 교육기관 에콜42와 제휴를 맺었다. 프랑스 통신업체 프리모바일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2013년에 서립한 에콜42는 기업이 원하는 창의적 개발자 양성을 위해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 에콜42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에서 활약하는 개발자를 속속 배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 캐나다 퀘벡시티,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 속속 캠퍼스를 개설했다.

에콜42의 서울 캠퍼스인 42서울은 과기정통부에서 2023년까지 5년간 매년 350억원 이상씩 총 1,806억원의 예산을 지원 받고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개포동 디지털혁신파크에 공간을 마련해 내년 2월부터 교육을 시작한다. 원장은 네이버의 교육센터 넥스트 대표와 국민대 소프트웨어학부 교수를 지낸 이민석 박사가 맡았다.

지난 9일 42서울 운영을 맡은 교육기획운영팀의 김샛별(32), 김종훈(31), 한수민(29), 한현규(28) 매니저를 서울 역삼동 위워크센터 내 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교육 방법을 들어봤다. 이들이 속한 운영팀은 일반 학교의 교무실에 해당한다. 일부가 프랑스 파리의 에콜42까지 파견을 다녀온 이들은 앞으로 42서울을 운영하며 한국적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종훈(왼쪽부터), 한현규, 한수민, 김샛별 매니저가 42서울의 운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종훈(왼쪽부터), 한현규, 한수민, 김샛별 매니저가 42서울의 운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정답 없는 문제로 교육생 선발, 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을 본다

-42서울을 도입한 이유는.

김샛별: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인데 현장에 필요한 인력 공급이 안되니 실무형 인재를 양성해 이를 해결하자는 것이 도입 이유다.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수민: 고졸 이상 학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면 나이, 성별,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하면 1차 인터넷 시험을 치른다. 지난달 실시한 1차 시험에 1만여명이 지원했고 이 중 400명이 선발돼 다음달 20일부터 2월15일까지 한 달간 ‘라피신’이라는 2차 시험을 거친다. 이를 통과한 최종 합격생들이 내년 2월 말 또는 3월 초에 23개월 과정의 본 교육에 들어간다.

-라피신이 무엇인가.

김샛별: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물에 던져 살아나온 사람만 최종 합격시키는 힘든 과정을 의미한다. 이 기간에 지원자들은 각종 과제와 프로젝트를 풀며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검증 받는다. 학생들 상호 평가가 합격을 가르는 중요 요소다.

-1차 온라인 시험은 어떤 문제가 나오나.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할 수 있나.

김종훈: 일반 시험과 다르게 기억력과 논리력을 본다. 문제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없다. 문제 내용이 매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42서울은 답이 아니라 문제 풀이 과정을 본다. 그래서 채점도 인공지능(AI)이 한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 보는 것이다.

42서울의 운영을 맡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샛별(맨 왼쪽) 매니저는 "이미 1차 시험 합격자는 내년 하반기 정원까지 포함해 3기 기수에 걸쳐 총 1,700명을 뽑았고, 이 중 400명이 다음달 시작하는 2차 시험 라피신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42서울의 운영을 맡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샛별(맨 왼쪽) 매니저는 "이미 1차 시험 합격자는 내년 하반기 정원까지 포함해 3기 기수에 걸쳐 총 1,700명을 뽑았고, 이 중 400명이 다음달 시작하는 2차 시험 라피신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한국식 수업은 잊어라, 동료 학습으로 문제 해결 능력 키운다

-교사 없는 교육 방식이 특이하다. 교사가 없으면 어떻게 배우나.

한현규: 교사 뿐 아니라 한국식 수업이 없다. 교재도 없다. 교사가 교재에 나온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 42서울에서 팀을 구성해 주고 각종 과제와 프로젝트를 제시한다. 이를 팀원들끼리 의논해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모르면 서로 물어보고 잘 아는 사람이 가르쳐 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율 학습으로 보완하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팀원들은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계속 교체된다.

김샛별: 정해진 교육 시간도 없다. 학생들은 24시간 연중무휴로 개방되는 교육센터에서 스스로 학습일정을 정한다. 규율로 학생들을 제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규칙과 문화를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식을 도입하는 이유는.

한수민: 돌발 상황에서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다. 기업들이 원하는 개발자는 정해준 것만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의적 인재다. 문제가 발생하면 답을 찾는 개발자를 원한다.

한현규: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이 개발자의 소통 능력이다. 기업들은 개발 능력도 중요하지만 협업 할 수 있는 개발자를 원한다. 42서울은 이를 길러줄 것이다.

-에콜42도 같은 방식인가.

김종훈: 그렇다. 10월 말 입사해 파리의 에콜42에서 2주간 연수했다. 서로 거침없이 질문하는 학생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입시 교육 위주인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경쟁 상대여서 얘기를 잘 하지 않는데 에콜42 학생들은 경쟁자이기 이전에 서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동반자였다. 문제를 풀 때까지 서로 생각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의견을 나눴다. 또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수 많은 프로젝트를 풀며 팀원들이 바뀌다 보니 모두 알게 된다.

김샛별: 에콜42나 42서울의 목적은 동료 학습이다. 즉 지식 습득과정에 도움이 필요하면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준다. 가르치는 사람의 무조건 희생이 아니라 각자 아는 지식을 서로 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동료 학습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콜42 출신들은 어떤 상황이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국내에서 처음 하는 실험이다. 기존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은 교사 없는 교육을 불안해 하지 않을까.

김종훈: 바로 그런 불안을 없애기 위해 라피신 과정을 도입했다. 교사가 없는 상황에 계속 맞닥뜨리며 스스로 단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수민: 대신 과제를 게임의 레벨 통과 시스템처럼 구성했다. 기초 단계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다. 따라서 같이 입학해도 사람마다 진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23개월 과정을 1년 안에 마칠 수도 있다.

-평가는 어떻게 하나.

한수민: 동료들이 평가한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프로그래밍 코드를 보며 배우고 평가한다. 좋은 프로그래머는 코드 가독성이 뛰어나다. 즉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코드를 작성해야 뛰어난 개발자로 평가 받는다. 이런 것을 서로 배우고 평가하게 된다. 개발 과정의 협업을 위한 소통이나 가독성 좋은 코드를 설계하는 능력은 대학의 소프트웨어 전공자들보다 42서울 학생들이 더 뛰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42서울 운영을 맡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한현규 매니저는 "에콜42의 미국 캠퍼스인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캠퍼스를 유심히 보고 있다"며 "미국 캠퍼스는 기업과 협업이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42서울 운영을 맡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한현규 매니저는 "에콜42의 미국 캠퍼스인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캠퍼스를 유심히 보고 있다"며 "미국 캠퍼스는 기업과 협업이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등수 따지는 서열화 교육 대신 기업과 연계된 프로젝트로 평가

-평가 결과에 따라 등수가 나오나.

한수민: 42서울은 서열화 교육을 하지 않는다. 점수는 나오지만 등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 기업에서 42서울 출신들을 채용할 때 무엇으로 실력을 가늠하나.

한수민: 학생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중 일부는 실제 기업들과 연결된 것들이다. 참여 프로젝트가 곧 학생의 실력을 증명하게 된다.

한현규: 학생들마다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보여주는 별자리 지도 같은 홀로그래프가 형성된다. 이를 보면 해당 학생이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알 수 있다.

김종훈: 학생들은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임승차는 없다. 학생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이를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는 누가 만드나.

한수민: 운영팀이 만든다. 기업들과 계속 소통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개인별 또는 팀 단위 프로젝트에 녹여 넣을 예정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단기 과제도 만들어 제시한다. 개발자들의 모임인 국제 해커톤도 열 계획이다.

김샛별: 운영팀은 학생들이 기업들에게 어떻게 평가 받을지 계속 부딪쳐 검증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국내 산업현장에 맞는 특수성 때문에 에콜42에서 할 수 없다.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X’를 개발하는 것이 운영팀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프로젝트X는 무엇인가.

김샛별: 프로젝트X는 산업 현장에서 개발자를 가장 많이 원하고 관심이 많은 분야를 정해 인재 교육과정을 만드는 중장기 과제다. 학생의 수준을 정확하게 진단해 교육 과정을 세밀하게 설계하고 평가까지 하는 전 과정을 자동화할 계획이다.

한수민: 프로젝트X의 목적은 한국형 에콜42 같은 새로운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다음달부터 방향을 정해서 개발에 들어갈 것이다. 완료까지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개발이 끝나면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창업 지원도 하나.

한수민: 교육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학생들의 신생(스타트업) 기업 창업이다. 42서울은 인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팀을 꾸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종훈(왼쪽부터), 한수민, 김샛별, 한현규 매니저가 42서울 운영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김종훈(왼쪽부터), 한수민, 김샛별, 한현규 매니저가 42서울 운영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제공

◇”지금 교육으로는 안 된다” 운영팀의 교육 공학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어떻게 42서울에서 일하게 됐나.

김종훈: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네이버와 교육기술 기업인 테크빌 등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했다. 원래 교육자가 꿈이어서 지금도 밤에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컴퓨터공학과는 성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하지만 성적으로 학생들의 개발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것을 바꿔보고 싶어서 42서울에 지원했다.

한현규: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뒤 유명 게임업체 크래프톤에서 조직문화를 개발하고 직원들을 교육하는 인력개발 담당자로 2년간 일했다. 어려서부터 경쟁 위주의 서열화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은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는 21세기인데 학교 교육은 여전히 책과 선생에게 매달리는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42서울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지난달 합류했다.

김샛별: 대학에서 교육심리와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일방적 강의식 교육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문제해결 학습법(PBL)에 관심이 많아 모 대학의 교수학습센터에서 3년간 연구했다. 이후 2년간 기업 채용 컨설팅 일도 했다. 이때 PBL을 경험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보고 소프트웨어 교육에 이를 접목해 보기 위해 42서울에 오게 됐다.

한수민: 대학에서 산업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무선통신 관련업체에서 4년간 사물인터넷(IoT)에 필요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전임 연구원이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기존 소프트웨어 교육에 문제가 많아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지금도 개발자의 꿈을 버리지 않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교육을 해보고 싶어 합류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김종훈: 42서울을 지원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합격 여부와 교육 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현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혁신 교육을 시작하는 42서울이 다른 분야 교육까지 영향을 미쳐서 전체 교육 시스템이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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