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종각역 앞. 5,000여명의 시민들이 축 늘어진 채 도로 위에 드러누웠다.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각국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촉구 공동 퍼포먼스 ‘다이-인(die-in, 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행동)’의 일환이었다. 죽어 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온몸을 던진 참가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미지근했다.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시민들은 잠잠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역사학자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미국 드렉셀대 교수와 인류세 워킹그룹에서 활동 중인 고생물학자 마크 윌리엄스 레스터대 교수의 어조는 단호했다. “이대로 가다가 인류는 한 세기 내 멸종할 것입니다. 이제는 주저 없이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0일 KAIST 인류세연구센터가 개최한 ‘국제 인류세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인류세란 최근에 고안된 지질시대 구분법으로, 인류 문명의 결과물인 콘크리트나 플라스틱 등이 각종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1950년대를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인류의 전지구적 패권과 더불어 전지구적인 책임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만나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게 새롭다.
놀스= “45억년 지구 역사에서 지금은 매우 특별한 시기다. 인간은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도 지구 전체의 땅과 대기를 뒤흔들고 있다. 공룡 멸종은 인간이 바꿀 수 없었다. 인간이 일으킨 변화는 인간이 바로 잡을 수 있다. 자연과학자가 인류가 지구에 끼친 영향을 측정한다면, 인문ㆍ사회과학자는 인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양측의 만남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실제로 일어날까.
윌리엄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세기 내에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인간이라는 한 종(種)이 전 지구를 장악한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물론, 다른 동물도 멸종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얼음이 없는 땅 가운데 95%는 인간을 위한 땅으로 쓰인다. 5%에만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또 인간은 연간 37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지구를 뜨겁게 하고 있다. 화산은 고작 2억톤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위기가 과장됐다고 말하는데.
놀스=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회의론을 주장하기엔 이미 과학적 증거가 너무 많다. 트럼프가 반대하는 건 과학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지세력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감추고 무시하는 트럼프의 정치야말로 제일 먼저 멸종될 것이라 장담한다.”
-한국에선 탈원전정책에 대해 경제계의 반발이 크다.
놀스= “탈원전은 인류세라는 엄중한 현실을 반영한 합당한 정책이라 본다. 원전 중심의 한국의 전력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눈앞의 이익이 아쉬워 반대하겠지만, 정부는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핵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미래세대를 위한 길이다.”
-미세먼지는 중국과 연계돼 한층 더 복잡하다.
놀스= “동아시아 국가들은 무역과 안보 문제는 함께 논의하고 협력하지 않나. 대기 오염 문제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환경문제를 다루려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필요하다. 오염물질은 국경이란 걸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기후위기 대응 운동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있다.
윌리엄스=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에서 희망을 봤으면 한다. DMZ는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몰린 동물 종을 되살려 원래의 먹이사슬을 복원하는 대규모 작업 ‘리와일딩(rewilding)’의 대표적 사례다.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자연 스스로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리와일딩의 핵심이다. 작게는 옥상 텃밭이나 마당, 정원을 가꾸는 것만으로도 내 주변의 생명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놀스= “정치인에게 기대하지 말고, 시민이 먼저 나서 줄 것을 당부한다. 변화는 가정, 교회, 학교, 노조 등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야 한다. 거대한 사고의 전환은 몇몇 지도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한국도 촛불집회를 겪으며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지 않았느냐. 인류세 시대, 우리 모두가 오염과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할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나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스스로를 교육하고 행동할 책임이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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