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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의 펭귄뉴스] ‘펭하!’ 12월 남극은 펭귄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간

입력
2019.12.20 15: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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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위에 서 있는 턱끈펭귄
바닷가 바위에 서 있는 턱끈펭귄

“앙앙앙, 앙앙앙” 펭귄 번식지가 가까워지자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극 세종기지에서 도보로 30분 가량 떨어진 곳엔 남극특별보호구역 171번으로 지정된 나레브스키포인트, 일명 펭귄마을이 있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약 5,000쌍 번식하는 펭귄들의 터전이다.

이곳엔 여러 생명체가 공존한다. 펭귄의 알과 새끼를 사냥해서 먹고 사는 갈색도둑갈매기 둥지가 다섯 개 정도 보였고, 남방큰풀마갈매기는 펭귄 번식지로 가는 입구에 여섯 쌍이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펭귄 분변이나 토사물을 주워 먹는 칼집부리물떼새 한 쌍도 보인다. 삿갓조개를 먹는 남방큰재갈매기도 바닷가 주변 바위 위에서 꾸준히 관찰된다.

올해로 여섯 번째 남극행. 한국은 추운 겨울이 시작됐지만 남극은 이제 따뜻한 여름이다. 남극 킹조지섬 기온은 영상 2~3도까지 오르고, 바다는 영양 염류로 가득 찬다. 이에 따라 동물 플랑크톤이 늘어나고 이 시기에 맞춰 혹등고래가 이동하고 펭귄이 새끼를 키운다.

펭귄마을에 있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2개의 알을 품는다. 알 표면을 배 안쪽 포란반에 접촉해 체온을 전달하는데, 약 5주간에 걸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배아가 성장한다.

12월 남극은 펭귄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간. 이달 11일엔 첫 젠투펭귄 새끼가 관찰됐다. 남극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둥지를 튼 녀석이다. 16일엔 첫 번째 턱끈펭귄이 보였고 다음날엔 많은 둥지에서 새끼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펭귄의 계절이 왔다. 보통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태어났던 녀석들이 예년보다 일주일 가량 빨라졌다. 최근 들어 부화하는 시기가 앞당겨진다는 것을 느낀다.

부화 후 이틀째를 맞은 젠투펭귄 가족
부화 후 이틀째를 맞은 젠투펭귄 가족

이번 조사의 주요 목적은 펭귄의 잠수행동 관찰이다. 펭귄은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새끼가 태어나면 바쁘게 바다를 오가지만, 알을 품는 기간엔 최대 닷새 동안 계속 바다를 헤엄친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멀리 헤엄치고, 얼마나 깊이 잠수할까. 이달 10일 포획해서 위치추적기를 달아준 녀석은 일주일이 지난 17일에 둥지에 나타났다. 기기를 회수해서 확인해보니 약 20㎞ 떨어진 곳까지 헤엄쳤고, 최대 120m까지 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펭귄은 육아의 절정기로 접어들었다. 바다에 다녀온 펭귄은 배가 불룩 나왔다. 무게를 측정해보니 약 0.8㎏이 늘었다.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주기 위해 바다에 다녀오는 시간도 짧아졌고, 더 많은 먹이를 잡아오고 있다. 주요 먹이원은 새우와 비슷하게 생긴 크릴이라는 갑각류인데, 이로 인해 번식지 주변은 크릴 냄새로 가득하다. 정확히 말하면 크릴을 먹고 배출한 분변 냄새다. 덕분에 조사를 마치고 나면 옷에 크릴 색을 띤 분홍빛 분변이 잔뜩 묻고 손에는 그 냄새가 밴다. 펭귄을 포획하고 놓아주는 작업을 반복하는 동안 부리와 날개로 공격 당해, 내 다리와 팔 이곳저곳에 피멍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진 결과물이 펭귄의 주요 취식지를 밝히고 남극 해양을 보호하는 데 쓰인다고 생각하면 냄새와 멍쯤은 견딜 수 있다.

글ㆍ사진=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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