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소외, 연령별 할당제 필요할 정도
복받은 586세대, 20-30 위한 자기희생 필요
원로와 586중진정치인이 세대교체 앞장서야
지난해 정년을 앞두고 학교 관계자로부터 석좌교수를 신청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학생들을 계속 가르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혹이 생겼지만 사양했다. “나는 정규직 교수로 30년 근무했고 그런대로 연금도 받으니 자리잡지 못한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젊은 연구자를 정규교수로 채용하십시오”.
며칠 뒤 퇴임강연에서 나는 말했다. “나는 대학시절 감옥 가고, 제적당하고, 강제 징집당했고, 기자가 된 뒤에도 신군부의 검열에 저항하다가 유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교수가 되어서도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는 등 평탄하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한국현대사에서 복 받은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에 태어났으면 일제와 해방공간의 격동 속에서 젊은 나이에 죽었을 것입니다. 30년 뒤에 태어났으면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고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이 실력’인 헬조선에서 스팩전쟁에 청춘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니, 감옥 가고 고생은 했지만 긴급조치와 유신 때 대학을 다닌 ‘유신세대’인 것이 얼마나 복 받은 것입니까?”
조국사태, 조국으로 상징되는 ‘586 운동권 엘리트’들에 대한 20대의 분노와 절망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이 두 일화다. 물론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계급이라는 세대 ‘내’의 불평등, 세대를 ‘가로지르는’ 불평등이다. 또 잘 나가는 소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60년대 생으로 80년대 학번으로 50대인) ‘586전체’를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586의 다수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민초들일 것이다. 그러나 세대라는 시각에서 보면, 586세대가 복 받은 나의 세대보다도 더 복 받은 세대, 어쩌면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복 받은 세대’인 것 같다. 이는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란 책이 여러 통계를 통해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586세대가 민주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후속세대에게 배분돼야 할 부와 권력을 지난 15년 이상 독점하면서 이제는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니라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했다”고 비판한다. 한 20대 대표는 한 발 더 나가, “586의 비극은 이제 자신들이 지배계급이 됐으면서도 아직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정치권이 그러하다. 586운동권은 2000년 총선 때 정치권에 진입하기 시작해 근 20년 권력을 누리고 있는 반면 20-30대 정치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세대교체를 위해 캘리포니아 주의회처럼 12년 이하로 의원직을 제한하거나, 인구에 따른 연령별 할당제를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586세대인 이철희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가슴을 친다. “586세대의 마지막 정치적 임무는 새로운 세대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촉진자 역할이 되는 것이다. 정치멸종세대인 20-30대에게 자리를 비켜 줘야 할 때가 됐다.” 그의 제안대로 근 20년 권력을 누린 586 중진들이 세대교체를 위해 아름답게 자진해 퇴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최근 송철호 울산시장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586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임종석 전 의원이 제도권정치를 떠나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손뼉을 쳐줄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한 중진은 용퇴론에 “모욕감을 느낀다”고 반발한다. 하긴 깨끗하게 정계은퇴를 선언한 원혜영 의원과 달리 국회의장까지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안타깝다. 이 같은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자유한국당은 2000년 총선에서 거물들을 물갈이한 이회창모델에 따라 대폭 물갈이를 할 것이라니 불안하다. 여권, 특히 586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영화 ‘친구’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아이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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