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신건강센터 2019년 조사… 13가지 증세 중 1개 이상 경험
경기 안양시의 김영석(가명ㆍ49)씨는 최근 배우자와 이혼한 이후 극단적인 기분 변화에 시달렸다.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지나치게 가라앉는 식이다. 그러나 김씨는 병원을 찾아가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지인의 권유에 “이 정도는 병원에 갈 정도가 아니라”라고 답하며 홀로 참을 뿐이다.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어도 병원에 가서 고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지난 1년간 지속적인 우울감ㆍ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겪었을 때 타인과 상담하거나 병원을 방문했다는 응답자는 2명에 그쳤다. 저절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달 작성한 ‘2019 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 이상(62%)이 최근 1년간 13가지 종류의 정신건강 문제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2.3%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종류별로는 심각한 스트레스(37%)가 가장 많았고 생활이 불편할 정도의 기분 변화(30%), 수일간 지속된 우울감(30%), 불안(27%)이 뒤를 이었다. 환청ㆍ환시ㆍ망상(7%) 자살생각(9%) 등은 10%를 밑돌았다. 국민 1인당 평균 2.2개의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고, 5개 이상 겪어 일상 생활이 크게 힘들 정도의 고위험군은 20%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5~69세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10월부터 1달간 진행됐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와 상담하거나 병원을 방문했다는 응답자는 22%에 그쳤다. 6개월 내 치료를 받았다는 응답자 비율은 46%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1년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경우도 30%에 달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심각하지 않아 그냥 놔두면 나아질 것 같아서’(39%), ‘정신질환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서’(20%)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17%), ‘정신과 치료에 대한 두려움’(10%)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4월 진주 방화ㆍ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정신질환자 관련 범죄를 언론이 집중 보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64%)는 응답 비율이 전년보다 4%포인트나 늘었고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내게 등을 돌릴 것이다’라는 답변 비율 역시 38%에서 39%로 증가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가 널리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83%) 치료가 가능하며(72%) 정신질환자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64%)고 생각하는 응답자 비율이 지난해보다 1~4%포인트가량 상승했지만 동시에 범죄에 대한 공포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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