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부문] ‘요리는 감이여’ 창비교육 편집부
“할머니께서 ‘배차를 넌칠넌칠 썰어!’라 말씀하시는데 ‘넌칠넌칠’이 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여쭤봤죠, 그랬더니 ‘넌칠넌칠이 넌칠넌칠이지 뭐야!’ 하셨어요. 하하. 지역색과 입말을 살려 책을 꾸리려니, 정말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요리는 감이여’는 충청도 할머니 51명의 요리 비법을 담은 책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손끝이 꽤나 무거워질 것이다. 할머니들은 물론 채록과 삽화를 위한 재능기부자 37명에 지역 작가, 교수, 편집자까지 수많은 사람이 피땀으로 엮어낸 결과여서다.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혜선 창비교육 편집부 과장은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이하 교육원)의 행사 사진을 마주치게 됐다”며 “사진을 찬찬히 보니 할머님들이 쓰신 레시피와 그림 등이 전시돼 망설임 없이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이 과장은 “콘텐츠가 너무 좋아서 당연히 다른 출판사와 계약했겠지 생각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이 과장과 함께 한국일보와 만난 신효정 교육원 주무관은 “전화를 받고 너무 좋아서 잠을 못 잤다”고 돌이켰다. 51명의 할머니들은 교육원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 프로그램 대상자였다. 전쟁 탓에, 경제적 사정 탓에 학교를 못 다녀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보자며 팔을 걷어붙인 어르신들이다. 신 주무관은 “할머니들이 요리 레시피를 손 글씨로 직접 적고, 이를 보충할 그림은 지역 내 청소년들이 봉사하며 그리는 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여기서 나온 결과물을 자료집으로 엮었고, 이를 다시 가다듬어 책으로 탄생시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엔 삐뚤삐뚤한 할머니 글씨, 어수룩한 음식 그림이 그대로 실려 있다. 가공을 최대한 줄이자는 공감대 속에 많은 이들이 수개월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만들었다. “할머니들이 책을 내는 데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았고 청소년 봉사자들도 재료나 음식을 낯설어해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해줬어요. 한번은 ‘백설기’를 그려 달라는 부탁에 한 아이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하트 모양 떡을 그려 왔더라고요. 요새 백설기는 그거니까요. 전통 백설기의 모양을 설명해주고, ‘시룻번(시루를 솥에 안칠 때 김이 새지 않도록 바르는 반죽)’ 같은 요리 도구를 설명해주고 하느라 진땀 뺐죠. 하하하.” 신 주무관이 책 출판 과정을 되새기며 웃었다.
또 하나의 큰 관문은 외계어 같은 할머니들의 방언. ‘어슷어슷,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크기로’라는 뜻의 ‘넌칠넌칠’을 포함해 숱한 방언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방언학 전공 교수들까지 동원됐단다. 전문가들마저도 모르는 방언이 많았기에, 이 과장은 독자를 위해 책 뒤편에 ‘할머니 요리어 사전’을 싣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겅그레’(찌려는 것이 솥 안의 물에 잠기지 않도록 받침으로 놓는 물건), ‘한 갈림’(밥 공기 등에 윗 부분을 덜고 난 딱 한 그릇 분량을 남긴 정도) 등 흥미로운 할머니들의 입말이 실려 있다.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페이스북에 소개하면서 또 한번 주목받았다. 이 과장은 “문 대통령 페이스북에 소개됐다는 소식에 사무실에서 벌떡 일어나 ‘와!’ 하고 소리 질렀다”며 웃었다. 책 출간 이후에도 큰 감정 동요가 없던 할머니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즐거워했다고 한다. 신 주무관은 “이 책은 아이와 할머니 등 다양한 세대를 한데 모아 통합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노령화가 심화되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지방의 문화를 기록, 보존한다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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