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 앱, 편지 쓰는 앱 통해 아날로그 매력 느껴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고, 그림그리기 동호회 활동까지
직장인 권유진(25)씨의 취미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이다. 권씨는 지난해 집안을 샅샅이 뒤져 아버지가 대학 때 썼던 프라티카 필름 카메라를 찾아냈다. 필름 카메라에 푹 빠지게 된 건 뜻밖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구닥’ 때문이었다. 이 앱은 사진을 찍어도 바로 볼 수 없다. 24장을 찍어야 하고 3일이 지나야 스마트폰 앨범에 저장된다. 꼭 24장의 필름을 쓰고 3일 가까이 인화를 해야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던 필름 카메라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게다가 사진의 질감도 필름 카메라를 인화했을 때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권씨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디지털과는 사뭇 다른 아날로그 감성을 느꼈다”라며 “빠르게 찍고 끝나던 스마트폰 사진과 달리 시간과 정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옛 카메라를 손에 쥔 권씨는 시간 날 때마다 골목 골목을 다니며 사진을 즐기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진 20대가 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PC등 첨단 디지털 기기를 끼고 살다시피 해 온 20대들이지만 부모 세대들이 익숙해 하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한껏 느끼고 있는 것. 빠르지만 차갑게 느껴졌던 디지털 감성에서 벗어나 조금 느릴 지라도 따뜻한 옛 감성이 이들을 사로 잡았다.
◇스마트폰에 옛 감성 넣어… 기다림 선사
특이한 것은 20대들에게 아날로그 감성을 접하게 해 주는 것이 다름아닌 디지털 기기라는 점이다. 스마트폰은 터치 몇 번만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빠름의 대표 주자이다. 이런 스마트폰에도 아날로그의 감성이 스며들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앱들이 등장해 20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손편지를 주고 받던 감성을 그대로 녹여낸 앱 ‘밤편지’가 대표적이다. 밤편지는 앱 내 우체국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는다. 우체국을 이용하는 만큼 우체국의 영업 시간을 지켜야 하며 우표도 필요하다.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 톡처럼 즉시 도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느림이 선사하는 기다림이 오히려 20대에게 설렘을 주고 있다.
사진 앱 ‘구닥’을 이용해 찍은 사진을 보려면 최소 3일이 걸린다. 이 앱을 사용한다는 양지안(24)씨는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걸리는 게 신기하다”며 “기다린 뒤 사진을 보니깐 기억이 되살아나며 몽글몽글한 감성이 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방식이 선사하는 따스함에 익숙지 않은 20대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태블릿PC에서 살아나는 아날로그 감성
아날로그 방식을 위해 디지털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한 경우도 있다. 클래스101, 솜씨당 등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디지털 드로잉’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드로잉은 아이패드, 갤럭시 탭 등 태블릿 PC에 손이나 펜슬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태블릿 PC 같은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생겨난 문화다. 기존 미술과 달리 태블릿 PC에서는 쉽게 수정할 수 있어 부담 없이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젊은 층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디지털이 붙으면 직선으로 가득 찬 딱딱함을 상상하기 쉽지만 인기 수업들은 주로 감성적인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친다. 연필의 질감을 살린 초상화부터 물감의 은은한 색감을 재현한 수채화, 자유자재로 흩날리는 손글씨를 보여주는 캘리그라피까지 손으로 그린 듯한 작품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디지털 드로잉을 즐겨 한다는 조원희(24)씨는 “아이패드에서는 잘못 그리면 망친다는 걱정이 없어 큰 부담 없이 그릴 수 있어서 좋다”며 “손으로 그린 투박한 선들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대는 새로움으로, 50대는 향수로 즐기는 아날로그
조씨는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종이에 그림을 그려 보고 싶어 아예 유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는 “기기가 아닌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게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긴 하지만 하나 둘씩 천천히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느낌과 감정을 살릴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사진 앱의 유행과 함께 20대 사이에 필름 카메라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SNS에서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140만여개나 검색되기도 한다.
아날로그의 감성은 20대들과 부모세대가 소통할 기회까지 준다. 20대에게는 신선함을, 50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세대 간 공감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옛날 카메라를 쓰고 있는 권씨는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찍었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이야기하며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추억을 만날 수 있었다”며 “아버지와 나 사이의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정해주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