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2,500여명 응모
전반적 수준 높아져 … “막판까지 고심 거듭”
내년 한국 문학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가 완료됐다. 올해 응모자는 시 975명, 소설 777명, 희곡 175명, 동화 327명, 동시 312명 등 총 2,566명이다. 2,000명 내외이던 예년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동시, 동화 부문은 지난해에 비해 각각 100명 가까이 늘었고 시 분야 응모자는 1,0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올해 응모작의 키워드는 단연 ‘퀴어’ ‘SF’였다. 현재 문학계의 주요 화두인 주제들이 신춘문예에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작품 수가 늘어난 만큼 어느 하나의 트렌드를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소설 부문 한 심사위원은 “퀴어와 SF뿐만 아니라 가족과 동물 이야기도 많았고,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듯 회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눈에 많이 띄었다”고 설명했다. 신춘문예 심사과정에서 흔히 ‘허수’라고도 불리는 자격미달 작품의 수가 줄어든 것도 특징이다. 전반적인 수준 향상이 도드라졌다는 얘기다. 또 다른 소설 부문 심사위원은 “막판까지 후보로 올려놓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 많아 심사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시 부문에서는 40대 중반 이상의 높은 연령대 응모자들이 대거 몰렸다. 한 심사위원은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고하거나 연로하거나 작고한 부모님의 얘기를 다루는 등, 인생의 황혼기에서 써내려 간 작품들에서는 시적 성취와는 별개로 문학에 대한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를 비롯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었던 해와 달리 자기 반성이나 다짐 등 ‘일기’에 가까운 시들이 많은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꼽혔다. 상대적으로 젊은 느낌의 응모작에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시인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 부문 심사위원은 “시의 도입 부분이나 결구의 분위기에서는 이미 등단한 시인의 이름이 자동으로 연상될 정도로 엇비슷한 시들이 많았다”며 “매끈하게 잘 쓰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목소리나 마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희곡 부문 역시 소설 분야의 흐름과 엇비슷하게 SF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드물긴 하지만 퀴어 소재를 다룬 완성도 높은 작품도 눈에 띄었다는 평이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과 시대를 배경으로 극을 전개한 인상적인 작품들이 특히 중요하게 언급됐다. 시대를 대변하듯 각박한 취업 현실 속 청년의 일상을 그린 작품도 많았다.
동화 부문은 아이들의 성 정체성 고민을 다루는 작품이 늘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어른들의 강요에 맞서거나, 아이들의 억제된 욕망을 분출시키는 등 과감하게 쓰는 작가들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노키즈존, 층간소음 이슈 등 어린이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여론에 경고를 보내고 사회적인 현장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직접 다루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도 말했다.
동시 역시 편수 증가와 함께 읽을 만한 작품이 많아졌다고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등, 동시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한 심사위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동시 부문에서도 창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이를 발판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밀고 나가려는 시도들이 많이 보여 좋았다”고 상찬했다.
당선작은 2020년 1월1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발표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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