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길희성의 성탄 메시지 “우리 모두 예수가 되자”
답을 교회나 목회자에게서 구하지 말라. 스스로 찾으라. 당신 안의 신성(神性)를 회복하라. 당신은 대체 언제까지 교회가, 목사가 시키는 대로 살 것인가.
25일 성탄을 앞두고 지난 20일 인천 강화군 심도학사(尋道學舍)에서 만난 길희성(76) 서강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가 꺼내놓은 이야기들이었다.
성탄이라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2019년을 되돌아보면 개신교계는 손가락질을 더 많이 받았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교회를 다닌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된 한 해여서다.
명성교회는 아버지 김삼환에서 아들 김하나 목사로 세습을 강행했다. 이를 막아야 할 이웃 교회들은 은근슬쩍 말을 바꿨다. 극우와 손잡은 일부 개신교계의 막가파식 정치적 행동도 논란거리였다. 그 꼭지점에는 전광훈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있었다. 사랑, 용서, 화해를 선포해야 할 개신교 교회와 목사들이 앞장서서 혐오, 차별, 배제를 선동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길 교수를 찾은 것은 그의 남다른 선택 때문이다. 그는 1987년 3월 한국 최초의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를 창립한 멤버 중 한명이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아래 모두가 평등한 신도라는 ‘만인사제설’이다. 사제계급의 특권을 부인한 것이다. 평신도교회는 이 뜻에 따라 별도의 목사나 장로 등을 두지 않는다. 모두가 목회자이자 신도다. 그렇기에 새길교회는 교회(예배당), 담임목사(목회자), 소속 교파(교단)가 없는 이른바 ‘3무(無) 교회’이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그는 서울대 철학과, 미국 예일대 신학석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고려의 대선사 보조지눌의 선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와서는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은퇴 뒤 길 교수는 2011년부터 종교간 벽을 넘어 영성 그 자체를 추구하는 심도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유독 대형교회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왜 그런가.
“한국의 개신교는 도덕성과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 유럽은 이미 탈종교 시대를 넘어 탈이념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와 미국, 일본 등은 아니다. 이는 이성에 기반한 계몽주의 시대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서다. 유럽은 18세기 인간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영향으로 종교의 전통적 가치관이 많이 무너졌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해서 여전히 초월적인 신의 뜻과 명령을 강조한다. 교회에만 가면 구원을 받는다는 식의 설명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먹혀 들지 않는데, 한국 개신교는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교회를 지지하는 신자들이 많다. 이유는.
“유럽과 달리 한국 교회나 절이나 종교단체는 일종의 사회적 역할을 한다. 대형교회에 다니는 이들 중 상당수가 하나님을 만나고, 영성을 찾는 데 노력하기보다 경제적, 정치적 이익과 관련한 관계를 맺는 데 치우쳐 있다. 대형교회들은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세속화됐다. 심지어 개신교가 정치 세력화되고 이를 기반한 정당까지 나오고 있지 않나. 전체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형교회들은 이미 세속화가 됐고, 역설적으로 탈종교시대에 세가 줄어들까 더 악착같이 정치 세력화하는 경향도 크다고 본다.”
-교회의 본래 기능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교회에 다니면 교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특수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면 은총 받고 구원 받나. 그렇지 않다.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세속적인 삶을 넘어서는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다. 종교라는 제도부터 성직자, 교리, 경전, 예배당 이런 요소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가시적인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 본연의 영적 가치를 좇기 위한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교회가 좇아야 할 영적 가치는 무엇인가.
“현대인은 종교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고 종교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영성은 외면하지 못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적 존재다. 누구나 죽음과 직면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죽으면 그냥 끝이 나는가’,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필연적으로 던지면서 영적 관심을 가진다. 이에 대한 답을 교회나 목회자에게 구하지 않고 스스로 찾는 것, 그것이 영성이다.”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개신교를 싸잡아 매도할 생각은 없고, 또 비관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순수한 영성을 지닌 다수의 성직자들과 양식 있는 신도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한다. 다만 종교가 집단화하고 세속화하는 데 대한 비판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종교 지도자들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초호화 교회를 짓는 게 바람직한지, 신자 수를 왜 늘리려는지 스스로 묻고, 얘기하면 얼마나 좋겠나. 종교 없이도 충분히 보람되고 건강하게 사는 이들이 많아졌다. 오히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더 문제가 많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판이 나오는 교회야말로 건강하다.”
-목회자와 신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탈종교시대에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는 구절이 있다. 독생자는 예수를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유일한 아들인 예수를 보내, 인간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얘기다. 예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에게 가장 분명하게 알려준 거다.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나. 예수가 대형교회를 세우러 온 건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사랑과 자비를 보여줬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나타난 것(肉化)처럼 인간도 그를 보고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神化)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얘긴가.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전통적 교회의 복음을 전파하는 한국 개신교계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 예수처럼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펄펄 뛰겠지만, 종교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신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예수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불성사상(佛性思想)과도 비슷하다. 이제 곧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예수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온 날이다. 성탄절을 맞아 인간에게 하나님, 예수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되새기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한다면 누구나 예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화도=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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