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표결서 5대2로 가결…고리 원전 1호기 이어 두번째
감사원의 한수원 감사 결과 따라 소송 이어져 제동 걸릴 수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향후 월성 1호기는 방사능 제거 작업 등을 거쳐 공식적인 폐쇄 절차에 돌입한다. 지난 2017년 6월 먼저 영구정지 단계에 들어간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는 국내에선 두 번째로 폐쇄되는 원전으로 기록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다음으로 설계수명 만료(2023년 4월)가 예정된 고리 2호기에 대해 계속운전(수명연장) 신청을 미루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서 열린 112회 회의에 상정된 ‘월성 1호기 운영변경허가(영구정지)’ 안건은 격렬한 찬반 논의 끝에 의결됐다. 이날 회의에선 재적 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표결에 동의했고, 엄재식 위원장이 안건을 표결에 부친 결과 7명 중 5명이 가결에 찬성했다.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 2명(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경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은 반대, 정부 추천과 민주당 추천, 당연직 위원들(김재영 계명대 의대 교수, 장찬동 충남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엄 위원장, 장보현 사무처장)은 찬성 입장을 냈다. 재적 위원의 과반이 찬성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영구정지안은 원안대로 가결됐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오후 1시 50분경 심의를 시작한 영구정지(조기폐쇄) 안건에 대해 초반에는 의결에 부정적인 위원들이 주로 발언을 계속하면서 반대 분위기가 우세한 듯 했다. 이병령 위원은 “한수원이 경제성을 과소평가해 영구정지를 신청했는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온 뒤 심의해도 늦지 않다”며 안건 재상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는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의 영구정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과소평가했다며 지난 9월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다.
이어 이경우 위원도 “가동 가능한 기간이 남아 있는 원전을 중단하겠다고 신청한 건 과거 수명이 끝난 뒤 영구정지 된 고리 1호기와 다른 사안”이라며 “향후 재가동할 가능성을 고려한 대비책이 없는 상태에서 승인해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 위원장은 “재가동 가능성은 원안위가 고려할 사안도, 강제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팽팽했던 분위기는 3시 20분쯤 진상현 위원이 표결을 제안하면서 달라졌다. 진 위원은 “남은 수명을 고려하는 건 원안위 회의에서 할 일이 아니고, 감사원 결과에 따라 심의한다는 건 원안위 회의 운영 규정에 명시돼 있는 독립성에 어긋난다”면서 “의견 합치가 안 된다면 표결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엄 위원장은 위원 한 명 한 명에게 표결에 동의하는지를 확인한 뒤 구두로 직접 찬반 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표결을 진행했다.
김재영 위원은 찬성 의견을 내면서도 “수명연장을 승인해줬고, 그에 대한 소송이 이어졌고, 연장 가동한 뒤 다시 영구정지를 신청한 건 일관성을 갖지 못한 정책의 대표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수 차례 회의 중 발언에서 명확한 찬반 의사가 나타나지 않아 사실상 가부를 가르는 핵심 인사로 꼽혀온 장찬동 의원은 “오픈 마인드로 회의에 임했는데, 도저히 타협 안 되는 문제라고 느꼈다”며 “표결로 결정하는 게 그나마 현명하다고 생각된다”는 발언과 함께 찬성 표를 던졌다.
월성 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졌지만 오락가락 했던 관계당국의 움직임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각도 나온다. 1982년 11월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다. 한수원은 10년 계속운전을 원안위로부터 2015년 2월 승인 받아 재가동하던 도중 지난해 6월 입장을 바꿔 이사회에서 조기폐쇄 결정까지 끌어냈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명을 연장해놓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돌연 빨리 폐쇄하겠다고 정반대 행보를 보인 한수원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과거 수명연장을 승인해놓고 이번엔 영구정지안을 가결한 원안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견해도 많다.
논쟁의 여지는 또 있다. 한수원을 감사 중인 감사원이 만약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이 배임이라고 결론 낸다면 검찰수사와 사법재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월성 1호기 논란에 대한 장기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에서도 감사 결과에 따라 조기 폐쇄 결정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원전 분야의 한 전문 변호사는 “감사 결과 한수원 이사회의 판단 근거가 된 기초자료가 잘못됐다고 나오면 이사회 결정은 법적으로 무효나 취소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면 월성 1호기가 이미 노후화한 데다 계속운전 기간도 약 3년밖에 남아 있지 않은 만큼, 이번 결정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고리 1호기만으로는 규모도 작은 데다 후속 작업 대상이 없어, 폐로 산업 지속성엔 한계가 있다. 원전 유형이 다른 고리(경수로)와 월성(중수로) 원전을 하나씩 폐로하면 기술 축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것이란 예상이다.
한편 지난 6월 확정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정부는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을 안 짓는 방식으로 원전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와 한빛 1호기가 차례로 수명이 끝난다. 현행법상 수명만료 5년 전부터 수명연장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한수원은 고리 2호기도 아직 수명연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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