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대만에 ‘대사’를 파견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통과되면 법적으로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셈이어서 중국이 고수해온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뒤흔들 수 있다. 내달 11일 총통선거를 앞둔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중국에 맞서 한층 목소리를 높일 전망이다. 반면 홍콩과 위구르 인권법으로 미국에게 연거푸 일격을 당한 중국은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인 브래드 셔먼 민주당 의원은 23일(현지시간) 스티브 샤봇 공화당 의원과 ‘대만 특사법(Taiwan Envoy Act)’을 공동 발의했다. 미국재대만협회(AIT) 대표를 임명할 때 상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위상도 대사급으로 격상하는 게 골자다. 현재 미 대사들은 상원에서 표결을 거치는 데 비해 AIT 대표는 의회 동의 절차 없이 국무장관이 바로 지명할 수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는 단교했다. 대신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공개된 미 국방부의 ‘인도ㆍ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싱가포르, 뉴질랜드, 몽골과 함께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할 ‘국가’로 대만을 언급하더니 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는 아예 대만의 군사력을 지원하겠다고 명기했다.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에 서명한 데 이어 이달 3일에는 ‘위구르인권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6개월 넘게 시위가 지속되고 있는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고,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탄압을 견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다. 여기에 미국이 대만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는 법안까지 제정하면, 중국은 아킬레스건 3곳을 모두 얻어맞는 셈이 된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5일 “대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미국의 압박이 역겹다”고 비난했다. 글로벌타임스도 “대만은 주권국가가 아니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레드라인을 밟고 있다”고 가세했다. 매체들은 2007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가 흐지부지된 전례를 거론하며 “절대 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반면 대만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지지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타이베이타임스는 해당 법안의 위원회 상정 시점을 대만 총통선거 사흘 전인 내달 7일로 예상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선거 개입이라고 여길 만하다. 대만 빈과일보가 2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민진당 소속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46.8%로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14.4%)을 32.4%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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