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이 생활 곳곳에
온라인서 ‘선택 구독’ 가능해지며 책에 담기는 내용 빠르게 변화
2010년에 등장한 아이패드를 비롯한 스마트 기기는 출판시장을 비롯한 지식정보산업을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전문 검색’을 통해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일이 가능해짐으로써 웹툰과 웹소설을 비롯한 플랫폼 기반의 콘텐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읽을거리가 넘쳐나자 개인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해서 ‘구독’하는 것만으로 웬만한 지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왜 꼭 책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이 무수히 제기되는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2020년대에는 변화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어서 책의 개념부터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미 책에 담기는 내용은 ‘보편적 지식’에서 ‘특수한 체험’으로 바뀌고 있다. 검색형 독서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어떤 질문에도 곧바로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이미 생활 곳곳에 침투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알아야 할 지식보다는 예측이 어려운 미래를 살아내는 데 필요한 지혜(혹은 지성)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욕구에 응답하기에는 한 분야를 탐구한 지식인 엘리트보다는 특별한 삶을 살아낸 이들이 유리했다. 책을 처음 펴낸 저자가 일약 1인 크리에이터로 각광받는 세상이 되다 보니 조직(국가나 민족)의 미래를 탐구한 이론(이데올로기)이 아닌 개인이 지향해야 할 바를 유머가 있는 실용지식으로 담아낸 책이 더욱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60회를 맞이하는 2019년의 한국출판문화상의 수상작에서도 그런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저술(교양) 부문 수상작인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는 저자의 5년 동안 조선소의 체험이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는 책이다. 편집 부문의 수상작인 ‘요리는 감이여’는 51명의 충청도 할머니들의 한평생 손맛을 전하고 있다. 이들 수상작들 이외에도 본심에 오른 다수의 후보작들 중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되었다.
저술(학술, 교양) 부문에 오른 책들은 어떤 책을 수상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여서 장시간의 격렬한 토론을 벌여야만 했다. 특히 학술 부문의 ‘법률가들’(김두식)과 교양 부문의 ‘불평등의 세대’(이철승), ‘파란 하늘 빨간 지구’(조천호)는 최후의 순간까지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망설이게 만든 책들이었다. 학술 부문 수상작인 ‘3월 1일의 밤’(권보드래)은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학술서에도 문학적 감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또 3‧1운동 100주년에 펴낸 시의성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
최근의 번역상은 한 권의 우수한 번역으로 눈길을 끌기보다 꾸준한 작업을 해 온 이들이 받아왔다. 몇 년 동안 수상 후보에 오르다 올해 수상자가 된 ‘아름다움의 진화’의 양병찬도 어려운 과학서적의 번역을 일생의 업으로 삼으며 과학의 대중화에 매진한 이였다. 어린이·청소년 부문은 공동 수상작을 냈다. 이미 세계적인 상을 여러 차례 받은 ‘강이’의 이수지에게 국내 수상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매우 독특한 SF 장편동화인 전수경의 ‘우주로 가는 계단’은 여러 과학이론을 동원해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모든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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