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부문]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양승훈
대학에선 정치학을 공부했고, 문화연구자를 꿈꾸며 대학원을 갔다. 졸업 후엔 뜬금없지만 큰 배를 만드는 대우조선해양에서 5년간 일했다. 지금은 다시 학교로 돌아와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조교수의 특별한 이력이다. “유학비용을 벌어 보겠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던 회사였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지난 18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양 교수는 멋쩍은 듯 웃었다.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는 양 교수가 경남 거제에서 대기업 조선소 노동자로 5년간 일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날것의 기록이다. 그는 인사팀과 전략혁신 기획팀, 사보기자 등을 거치며 대기업 조직 문화와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때 기록한 업무 정리노트가 이번 책의 밑바탕이다. 각종 지표와 사회과학적 분석이 가미돼 있지만, 현장의 디테일과 전문성을 생생하게 담아낸 덕분에 르포처럼 읽힌다.
책은 반도체 이전, 한국 경제의 효자 산업이었던 조선업의 몰락과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린 산업도시 거제의 위기를 ‘중공업 가족’이란 렌즈로 찬찬히 추적해나간다.
여태껏 한국 경제 위기를 논한 이론과 분석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 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서 드러나고,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지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양 교수는 “거제의 몰락은 어느 지역,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이자 제조업에서 4차산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넘어서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할 대안은 뭘까. 그는 사람과 현장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도, 사람도, 도시도 사라지게 두지 말고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유한 조선소 노동자들에겐 평생 가꿔온 기술을 중소부품 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지방 근무를 꺼리는 직원들에겐 남편이나 부모를 따라 이주하는 여성 가족들의 ‘괜찮은 일자리’까지 만들어주는 식으로 접근해보자는 제안이다. 양 교수는 “하청노동자를 배제하고 여성을 억압하며 일궈낸 산업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극복해나가는 데서부터 거제의 해법은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과학기술정책 분야로 박사과정을 시작한 양 교수는 앞으로도 사람 중심의 산업 정책을 연구해 나갈 생각이다. “사회학이나 지리학을 접목해 산업 정책을 연구하는 분은 있는데, 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한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는 것 같죠?”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