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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출산? 차라리 동거” 자유롭게 살고 싶은 Z세대

입력
2020.01.03 03:59
수정
2020.01.03 07: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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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세대, 넌 누구니?] <1> 인식과 가치관이 다른 세대 

 본보 Z세대 31명 심층 인터뷰, 83%가 결혼에 대한 부정적 평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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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Z세대결혼관 -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Z세대결혼관 - 송정근 기자

직장인 김지은(24)씨는 지난해 두 돌을 갓 넘긴 딸을 돌보느라 매일 정신 없는 일상을 보내는 30대 여성의 고충을 그린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크게 공감했다고 했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결국 영화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아무리 좋은 남편을 만나도 결혼하면 결국 여자는 애 낳고 집안일 하는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난 그게 겁이 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풍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Z세대는 이전 어느 세대와 비교해도 그 정도가 심각하다. 한국일보가 실시한 ‘Z세대 인식조사’에서 Z세대의 65%와 74%가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반면, 부모 세대인 X세대에서는 각각 54%와 52%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이제 갓 사회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Z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뒤 Z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떠오를 때쯤이면 심각한 인구 구성 변화에 따른 사회 구조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01-02(한국일보)
2020-01-02(한국일보)

◇왜 결혼 안 하나

Z세대 31명을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3개 그룹으로 나눠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의 심각한 정도가 더욱 두드려졌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무려 26명이었다. ‘그렇다’고 답한 경우는 직장인 2명과 고등학생 3명으로 5명에 그쳤다. 대학생 10명은 모두 ‘노’(NO)라고 답했다.

응답자 83%가 결혼에 ‘부정 평가’를 내려 Z세대 인식조사 결과(65%)보다 결혼에 대한 부정 인식 비율이 더 높았다. 대신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해도 괜찮나’란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0명(64%)에 달했다. 연애는 해도 결혼까지 가기보단 동거만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고 느끼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결혼을 꺼리고 동거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다양하다. 여성은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부담감을 주요 이유로 꼽았고, 남성은 주로 경제적 부담 때문에 꺼려진다고 했다. 여기에 Z세대만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Z세대에게 기본적으로 결혼과 출산은 곧 ‘자기 희생’이란 인식이 강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과 출산이 더는 경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며 “Z세대는 권리의식이 강하고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데 이런 세대 성향이 반영된 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Z세대 여성이 웨딩드레스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Z세대 인식조사에서 74%가 ‘노 키즈’를 원했다. 특히 여성은 89%(남성은 60.2%)가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Z세대 여성들은 ‘출산 후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서재훈 기자
Z세대 여성이 웨딩드레스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Z세대 인식조사에서 74%가 ‘노 키즈’를 원했다. 특히 여성은 89%(남성은 60.2%)가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Z세대 여성들은 ‘출산 후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서재훈 기자

◇“엄마의 삶 자신 없어”

결혼 제도는 Z세대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인식됐다. 결혼을 하면 사회 관습상 상대방 가족도 자신의 가족만큼 극진히 챙겨야 하는 등 각종 의무가 뒤따르는데 이 과정이 하나의 스트레스를 넘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일종의 족쇄가 될 거란 두려움이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윤모(여·23)씨는 “여전히 결혼은 둘만의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 대 가족끼리의 인륜대사로 여겨진다”면서 “내 가족 챙기기도 힘든데 상대 부모 형제까지 챙겨야 하는데 그러긴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거는 이런 의무가 없으니 서로 사랑한다면 결혼보다 나은 거 같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미술강사를 하는 20대 여성 정모(23)씨는 “우리 엄마가 살아온 삶을 보면 나는 아내의 삶, 엄마의 삶을 살 자신이 없어 결혼은 안 하고 싶다”며 “단지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 점점 어려워 지는 정규직 취업 등 팍팍한 경제 상황도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대학생 정용재(23)씨는 “결혼하면 대출받아 집도 구해야 하고 양가 부모님도 챙겨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이 들 거 같다”며 “대신 동거는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20대 남성 황모(23)씨는 “결혼하면 자식 먹여 살리느라 평생 일해야 하는데 과연 내 처지상 이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책임감을 안고 살 바에야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한 장면.
영화 ‘82년생 김지영’ 한 장면.

◇“아이한테 죄짓는 느낌”

출산에 대한 Z세대의 거부감은 결혼보다 더 컸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부정적 인식이 89%로 남성(60.2%)을 훨씬 앞질렀던 Z세대 인식조사와 마찬가지로, 심층 인터뷰에서도 여성일수록 부정의 정도가 더 심했다.

출산 후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20대 직장인 박모(24)씨는 “겨우 힘들게 취직했는데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육아 때문에 사실상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내 인생은 그때부터 끝날 거 같단 두려움이 든다”며 “주변에 일찍 결혼한 친구만 봐도 대부분 후회하더라”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라는 불만도 쏟아졌다. 대학생 김모(24)씨는 “나라에선 무조건 애를 많이 낳으라고 하는데 애 맡길 유치원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친형의 경우만 봐도 육아는 헬(지옥)이란 생각이 든다”며 “결혼은 해도 애는 절대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 금융회사에 다니는 20대 여성 안모(25)씨는 “돈이 많아야 사교육도 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데 난 그러고 싶지 않다”며 “아이에게 못해주면 괜히 죄짓는 느낌이 들 거 같아 아이는 안 낳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려고 여러 대책을 내놓는데 전혀 공감이 안 된다”며 “애만이라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출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심층 인터뷰에 응한 31명 중 21명이 정부의 출산 대책이 와 닿지 않는다며 부정 평가를 내렸다.

Z세대 인식조사에서 74% 노 키즈를 원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명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는 OECD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 사진=연합뉴스
Z세대 인식조사에서 74% 노 키즈를 원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명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는 OECD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 사진=연합뉴스

 ◇“인구위기론 강조해 압박해선 안돼” 

물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Z세대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긴 어렵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서 관찰된다”며 “다만 Z세대의 이런 인식이 현실화되면 출산율 관점에서 재앙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경각심 있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대론으로 국한해서 볼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명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문제가 된 만큼 정부가 법률적 결혼만 인정할 게 아니라 사실혼, 동거 등 다양한 형태를 정책으로 끌어안고 이후 결혼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획일화된 결혼 제도가 무너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커플 구성 방식이 다양화하는 추세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인구 위기론을 내세워 개인을 압박할 게 아니라 결혼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가져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교수는 “정부 대책은 여전히 경제적 지원에만 머물러 있는데 이는 세대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효과가 떨어진다”며 “결혼과 출산이 ‘내가 선택하는 나의 삶’의 맥락에서 가능하도록 근로시간 선택제 등 다양한 정책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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