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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툰베리’들 “기특하다구요? 우리 문제니까 행동하는 거죠”

입력
2020.01.09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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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세대, 넌 누구니?] <3>“글로벌 이슈? 우리 일이죠” 

그레타 툰베리를 따라 기후파업을 이끌고 있는 소피아 악셀슨(맨 앞)이 지난해 5월 스웨덴의 소도시 리세킬에서 학교 친구들과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소피아 악셀슨 제공
그레타 툰베리를 따라 기후파업을 이끌고 있는 소피아 악셀슨(맨 앞)이 지난해 5월 스웨덴의 소도시 리세킬에서 학교 친구들과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소피아 악셀슨 제공

“하우 데어 유(How dare you).”

지난해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 개막식 연설을 통해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17)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우리 말로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는 툰베리의 분노 섞인 목소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정상들을 향했다.

툰베리 등장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변화를 촉구하는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툰베리를 선정했다. 최연소는 물론이고 10대 청소년으로도 최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Z세대는 툰베리 만이 아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웡(23) 홍콩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 아동과 여성의 교육권을 위해 싸운 2014년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22) 등도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툰베리가 세계를 돌며 연설을 할 때 전 세계의 Z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등교나 출근을 거부하는 ‘기후파업’에 동참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중국의 ‘장벽’ 밖으로 퍼트린 것도 Z세대다.

최연소로 201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 출신 여성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AFP 연합뉴스
최연소로 201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 출신 여성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AFP 연합뉴스

 ◇기후문제 패러다임을 바꾼 ‘당사자성’ 

툰베리는 2018년 9월부터 금요일엔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10대 소녀의 이 작은 행동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지난해 9월과 11월에는 100개가 넘는 지구촌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기후파업에 참여했다.

툰베리의 진정성과 연설 능력이 뛰어난 면도 있지만 Z세대의 재빠른 지지가 세계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데 한 몫을 했다. 툰베리의 고향인 스웨덴에서 기후변화 시위를 이끌고 있는 18세 쌍둥이 자매 이사벨 악셀슨과 소피아 악셀슨도 그런 Z세대다. 악셀슨 자매는 지난해 10월 툰베리에게 상을 주려던 북유럽이사회 환경상 시상식에서 미국에 있던 툰베리 대신 수상 거부 입장을 발표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해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해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소피아 악셀슨이 지난달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밝힌 환경운동의 시작은 평범했다. 그는 “스톡홀름에서 공부했던 이사벨이 툰베리의 기후파업에 참여한 뒤 소도시 리세킬에서 학교를 다니던 내게도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후 소피아도 리세킬에서 학교 친구들을 모아 기후파업에 동참했다. 그는 “특별히 환경운동을 해본 건 아니었지만 우린 환경 문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세대”라고 당연하다는 듯 행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이 문제의 당사자라고 여기는 소위 ‘당사자성’이 또래뿐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 기성 환경운동 단체들까지 끌어들이는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쌍둥이 자매 이사벨 악셀슨(왼쪽)과 소피아 악셀슨이 지난해 9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파업을 하고 있다. ©제프 길베르트ㆍ 소피아 악셀슨 제공
쌍둥이 자매 이사벨 악셀슨(왼쪽)과 소피아 악셀슨이 지난해 9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파업을 하고 있다. ©제프 길베르트ㆍ 소피아 악셀슨 제공

올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스톡홀름에서 같이 살게 된 악셀슨 자매는 어느덧 6만명 규모의 행진이 벌어지는 스웨덴 기후파업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란 식의 기성세대 칭찬에는 손을 내젓는다.

소피아는 지난해 툰베리의 북유럽이사회 환경상 거부 이유에 대해서도 “그들은 마치 ‘이렇게 너희들이 기후 문제에 경각심을 높여주니 기특하다’며 관심을 보이는 척만 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변해서 더 이상 학교를 빠지지 않아도 되는 게 우리들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무상 생리대부터 총기 규제까지…연대의 힘 

영국에서 생리대 보편지급 정책을 이끌어낸 아미카 조지(20)도 기성세대가 외면했던 문제를 끄집어내 변화를 이끈 Z세대다. 여고생이었던 2017년 ‘13만명이 넘는 영국 여학생이 생리대를 사지 못해 학교를 결석한다’는 기사를 접한 게 시작이었다. 그의 온라인 청원은 순식간에 20만명의 서명인원을 넘어섰다. 곧이어 만든 프리피리어즈(#FreePeriods) 캠페인도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아미카 조지는 “생리 빈곤은 여학생들의 학습권 문제”라고 강조하며 생리대를 국가에서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통념을 깨트렸다. 연장선상에서 생리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캠페인도 벌였다. 공감한 청년들의 지지 속에 2018년 9월 스코틀랜드가 세계 최초의 무상생리대 정책을 시작했다. 뒤이어 지난해 4월 영국 정부도 초ㆍ중등 과정 모든 여학생에게 생리대 무상 제공을 결정했다.

영국에서 생리대 무상지급 정책을 이끌어낸 아미카 조지. 아미카 조지 트위터 캡처
영국에서 생리대 무상지급 정책을 이끌어낸 아미카 조지. 아미카 조지 트위터 캡처

2018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 데이비드 호그(20)는 친구들을 잃은 뒤 총기 규제 운동을 이끄는 Z세대다. 그는 2년 전 미국 중간선거 당시 SNS 캠페인과 시위를 통해 기업들이 미국총기협회(NRA)에 우호적인 의원들 후원을 끊게 하는 등 총기규제 여론 확산에 앞장섰다.

미국 내 총기 규제 시위 중 마이크 앞에서 발언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그. AFP 연합뉴스
미국 내 총기 규제 시위 중 마이크 앞에서 발언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그. AFP 연합뉴스

기후변화 대응부터 민주화 시위와 생리의 자유, 총기 규제까지 Z세대가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대’가 자리 잡고 있다. Z세대는 SNS를 통해 문화와 환경이 전혀 다른 이국의 친구들도 동일한 생각을 한다는 걸 확인하고 자신 있게 행동에 나섰다. 앞서 같은 문제를 외쳤던 기성세대까지 Z세대의 연대에 기꺼이 힘을 보탰다.

해외에서는 Z세대의 막연한 가능성이 사회 변화라는 놀라운 결과물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전 세계 수많은 ‘툰베리’들의 목소리를 그저 기특해하며 흘려 보낼 수 없게 됐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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