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 ‘아름다움의 진화’ 역자 양병찬
“저는 논문 한 편 없는, 순수한 ‘과학 덕후’예요. 좋아서 하는 ‘덕질’로 인정받으니 고마울 따름이죠.”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양병찬(59)씨의 겸손한 소감이다. 덕후는 덕후가 알아본다고 했던가. 양씨는 과학책 마니아 사이에선 이미 소문난 과학 전문 번역가다. 그의 이름은 과학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통한다. 앞서 ‘센스 앤 넌센스’와 ‘자연의 발명’으로 두 차례 번역 부문 본심에 올랐고, ‘아름다움의 진화’로 마침내 영예를 안았다. “돈벌이 안 되는 번역 일을 하느라 아내에게 늘 미안했는데 이번에 체면이 좀 섰습니다.”
미국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 리처드 프럼이 쓴 ‘아름다움의 진화’는 다윈의 잊힌 이론인 ‘성선택’을 전면에 내세워 ‘미적 진화’를 탐구하는 책이다.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이 진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수십 년간 조류의 생태를 관찰해 얻은 풍부한 사례와 이론을 통해 증명한다.
저자의 미적 진화론은 자연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 사회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성소수자 문제, 가부장제에 대한 논의로까지 발전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양씨는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을 신봉하는 후학들에 의해 무시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부흥시킴으로써 진화론의 새로운 측면을 조명했다”며 “이 책이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페미니즘을 과학적 페미니즘으로 격상시켰다”고 평했다.
양씨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재’ ‘비영리개인’ ‘사회간접자본’이라고도 불린다. 스스로는 “지식 공유자”라 칭한다. 그는 매일 새벽 3, 4시에 일어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실린 최신 과학 기사를 번역해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사이트에 올린다. 그렇게 쌓인 글이 대략 1,100여개. 대략 2만여명이 매일 그의 글을 읽고 있다. “과학계 최신 조류를 내가 가장 먼저 본다는 즐거움으로 하는 일이에요. 자기만족, 자아실현인 셈이죠.”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5년 전부터는 술도 끊었다. 하루 일과도 규칙적이다. 새벽에 최신 과학 기사를 업로드한 뒤 두세 시간 자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6시간 동안 과학책을 번역한다. 번역에만 하루 12시간을 쓴다. 양씨가 이렇게 열정적인 이유가 있다. 30대까지 평범한 삶을 살다 뒤늦게 천직을 찾았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금융계와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서른아홉 살이던 1999년 약대에 진학하며 진로를 틀었다. 40대 중반부터 약사로 일하며 밤에는 생물학, 의학 관련 기사를 번역했다. 5년 전부터는 번역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 사이 번역한 책이 30여권에 달한다. 내년에 나올 책만 5권이다.
그가 번역한 책은 각주가 많기로 유명하다. 끊임없는 연구와 학습, 그의 말을 빌리면 ‘덕질’의 결과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 아니라 그냥 ‘창작’입니다. 별도의 장르죠. 똑같은 베토벤의 음악도 연주자마다 다르듯이 말입니다. 저는 번역이 아닌 해설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80세까지는 하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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