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Voyage for Animals
종교적 전통이 문화권마다 달라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대 서양의 크리스마스의 상업적 이미지는 19세기 클레멘트 무어의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에 근거한다. 이 시는 하늘을 나는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끌고 있는 여덟 마리의 순록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하룻밤 동안 북극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도는 고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실제로 하늘을 나는 썰매를 끌 일이야 없었겠지만 동물이 인간의 이동을 도왔던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이다.
◇인간의 이동을 도운 동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전까지도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이동수단은 ‘자신’이었다. 몇 켤레의 짚신을 싸서 한양으로 떠나는 조선시대 여행객들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말이나 당나귀를 타는 것은 꽤 호화스러운 일이었다. 인간이 언제 최초로 동물을 이동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인간이 처음으로 ‘올라 탄’ 동물은 아마도 소가 아니었을까. 개를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군에 속하는 소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중요한 수송 동물이었다. 순하고 힘이 센 이 동물은 짐을 나르고 사람을 이동시켰다. 소 덕분에 농경이 시작된 이후 지역 공동체의 잉여 생산물을 저장하고 운반하고 분배할 수 있었다. 거대한 건축물의 설립을 가능하게 해서 권력자들에게 정치적인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또한, 인간 집단과 문화가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바퀴가 널리 사용되면서 수레를 끄는 일도 소의 몫이었다. 그래서 고대 아시리아 지역에서 황소의 가격은 은화 30세켈로 양 한 마리 가격의 12배에 달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좀 느리다는 것.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속도 밖에는 내지 못했다. 이런 이유 탓에 크기가 작고 힘이 세 말보다 먼저 수송용 동물로 활용되었던 당나귀의 가치도 높았다. 암컷 당나귀는 최소 32세켈에 이르렀다. 대장장이의 임금이 1세켈이고 도살업자의 임금이 3세켈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기원전 6000년경 가축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당나귀는 부리기에 편하도록 영리해 오랫동안 짐꾼으로 이용됐다. 지금도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산길에서는 당나귀를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 곳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른 동물을 활용하기도 했다. 더운 사막 지역에서는 낙타가 이들의 역할을 대신했다. 물을 먹지 않고도 여러 날을 버틸 수 있는 이 특별한 동물은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싣고 사막을 횡단했다. 인도 지역에서는 거대한 동물인 코끼리도 수송용 동물로 활용되었다. 극지방에서는 개나 순록이 썰매라는 특별한 운송수단을 끄는 일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 어떤 동물도 말처럼 인간이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공헌하지는 못했다. 말을 길들이는 건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말은 예민하고 빠른 동물이기 때문에 위험도 따랐다. 인도와 중국의 마(馬)의학 서적들에는 인간이 말을 길들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에 따르면 말은 천상에서 내려온 동물로 원래 날개를 달고 있었다고 묘사됐다. 그러나 물고 차는 등 길들이기가 힘들어 신이 날개와 쓸개를 떼어버리고 지상으로 내려 보내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상으로 떨어진 말의 신세를 딱하게 여겨 말이 아프면 잘 치료해 주도록 했고 현인들은 말을 치료하는 마의학을 발전시키게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말이 날개가 달려 있었을 리는 만무하나, 그만큼 빠르고 길들이기 어려웠다는 먼 기억을 이야기 속에 기록해 둔 셈이다. 여하튼 말은 이전의 수송 동물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인간의 ‘빠른 이동’을 도와줬다. 또한 말은 원거리 통신을 가능케 해 세상을 좀 더 가깝게 만들어 주고 통치 단위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19세기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 역사 발전의 일부분은 말이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인간이 정보를 빨리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 동물은 말뿐이 아니었다. 장거리 소식을 전하는데 비둘기의 귀소본능도 한몫을 했다.
한편, 어떤 동물들은 인간의 세상과 천상 혹은 지상의 세계를 연결한다. 사람들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새들은 이런 의미를 가진다. 기사나 왕이 죽었을 때 이들이 타던 말이나 당나귀를 죽여 함께 매장하는 일은 이들이 사후세계로 갈 때 이동수단으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경 만들어진 이집트 아비도스의 왕릉에서 발견된 여섯 마리의 당나귀 사체는 생전에 모두 관절염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을 태우고, 짐을 지고 나른 탓에 생긴 병변들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쉬지 못하고 사람을 지고 사후세계까지 힘겹게 가야 했던 모양이다.
◇인간이 이동시킨 동물들
인간은 생존 또는 탐험을 위해 경계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자신들뿐 아니라 동물들도 함께 이동시켰다. 많은 수의 가축이 함께 움직였고, 때로는 인간과 새롭게 만나는 동물들이 인간 사회로 편입됐다. 로마 시대만 해도 희귀하고 낯선 구경거리를 위해 맹수를 도시로 옮기기도 했고, 전쟁 중엔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산맥을 넘는 장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유럽으로부터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옮겨간 가축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은 물론 생태계까지 변화시켰다. 유럽인들에게 익숙하고 입맛에 맞는 가축들을 대량으로 사육하면서 원래 살고 있는 종들이 밀려나거나 멸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호주에서는 농부들이 가져온 토끼를 풀어 놓아 먹이다가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농작물을 훼손하고 풀을 먹어 치워 생태계를 황폐하게 했다. 그러자 그 수를 줄이기 위해 독약 살포는 물론, 대규모의 토끼 사냥에 나서고 펜스를 설치했다. 급기야 이 토끼들에게 치명적인 점액종바이러스와 칼리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생물학적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이 모든 혼란이 토끼의 수를 줄이는 듯 보인 것은 잠시뿐이었다. 여전히 호주에서는 토끼로 인한 피해가 연간 2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대륙 간의 이동은 19세기까지 증가하다가 감소했지만 최근에는 반대 방향의 이동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어 최근 고유종인 붉은 다람쥐를 거의 멸종시킨 동부회색 다람쥐는 애완용으로 수입되었다가 야생에 자리 잡은 사례이다. 연구자들은 일단 유입된 동물들은 살아남아서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유입을 막는 것이 재래종 동물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특히, 무분별한 희귀종 동물의 수입이나 밀수는 금지되어야 한다.
◇동물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이렇게 거시적인 이동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육되는 농장동물이나 반려동물과는 달리 현대의 동물들은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된다. 식용 동물의 경우 지정된 도축장으로 옮겨져 도살된다. 농장의 삶도 평안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축 운송용 차량을 타고 낯선 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도축장은 이들에게 더 큰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허술한 이동 차량에서 탈출한 동물을 잡느라 씁쓸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말 산업 육성이 정책적 지원을 받으면서 말 사육 두수가 증가했다. 이런 와중에 퇴역 경주마 등이 도축장으로 운송되는 비인도적인 방식이 해외 단체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동물운송에 대한 규정을 통해 운송 중 학대 행위가 일어나지 않고 운송용 차량은 지정된 설비 기준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을 이동시키는 데에는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다행히 법으로 금지되기 시작했으나 택배로 반려동물을 보내고 사고 파는 행위 역시 근절되어야 한다. 보호 장치도 없는 상자에서 이들이 느껴야 할 공포는 충분히 학대 수준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이동하는 데에도 좀 더 창의적인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아직은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자가용 차량에 부착할 수 있는 동물보호시트도 사람과 동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장비이다.
인간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번영을 우리는 동물에 크게 기대어 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류와 소통이 이들의 희생과 노동 속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동물이 원치 않았을 많은 이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동물의 안전하고 인도적인 이동에 인간이 좀더 기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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