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듣는다고.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나 또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받아들이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는 자꾸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곳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얼마 전 강연이 끝난 뒤 독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작가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했고, 내가 나 스스로에게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무엇보다 단답형으로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곱씹으며 오랫동안 생각해 보는 시간이 좋았다. 돌이켜보니, 오래 전부터 무언가 궁극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질주하는 삶에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이제는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뿐. 지금은 대단한 목표보다는 매 순간 더 나답게 살아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꿈꾼다.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지라도, 구체적인 목표는 있다. 글쓰기를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내 친구가 한국의 학회에 오랜만에 초대되었는데, 발표 후 토론을 위한 질문을 미리 서면으로 준비하라는 요구를 받고 당황했다고 한다. 왜 토론 질문을 미리 받냐고 묻자,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질문이란 본래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튀어나오게 마련이지 않은가. 예상을 뛰어넘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토론과 논쟁의 묘미를 느끼는 것이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돌발 질문에 대답하는 발표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 사람의 순발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생생한 과정을 바라보게 된다. 질문을 미리 받아놓고 대답도 미리 준비하는 문화에서는 생기발랄한 논쟁의 활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 토론할 수만 있다면, 질문은 갑작스러울수록, 대답은 준비가 없을수록 더욱 활기 넘치지 않을까. 단, 인신공격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더 풍요로운 대화를 위한 질문이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삶에는 대답하기 좋은 질문보다는 대답함으로써 고통스러워지는 질문, 대답을 자꾸만 미루고 싶은 질문, 대답 자체가 곤란한 질문이 가득하다. 어쩌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들은 대답하기 힘든 것들이 더 많다. 예컨대 ‘나는 그 사람을 왜 사랑할까, 나는 이 일을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진실로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같은 원초적인 질문들이 그렇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든 더 나은 대답을 내놓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장한다. 이제 나에게로 쏟아지는 질문들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북토크나 라디오방송에서도 나는 대본에 없는 질문이 튀어나올 때 기분이 좋아진다. 돌발적인 질문들, 생생한 만남의 현장에서 솟아오른 싱그러운 질문들이 더욱 새롭게 뇌를 자극한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꼭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작가님은 읽기가 좋으세요, 쓰기가 좋으세요?” 예전에는 쓰기가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다만 글쓰기란, 대답할 수 없는 모든 질문들에 대답하려는 인간의 아름다운 몸부림임을 깨닫는다. ‘읽기와 쓰기’ 중 더 좋은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내게는 ‘들숨이 좋은가, 날숨이 좋은가’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질문이다. 읽기와 쓰기는 내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싫증을 느끼지 않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우정에도 일에도 실패했을 때마다, 읽기와 쓰기만은 끝내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또는 대답을 미루거나 침묵함으로써, 나는 그동안 몰랐던 나를 발견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질문이 어려울수록, 질문이 갑작스러울수록 더욱 반가워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그 질문이 던지는 성찰의 기회를 반가워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우리 삶이 부디 대답하기 어려운 그 모든 질문조차 온몸으로 끌어안는 아름다운 몸부림이 되기를.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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