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에 그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의 물가안정목표치인 2.0%를 한참 밑도는 수치로 사실상 디플레이션(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0.4% 상승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래 54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미만을 기록했던 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8%)과 국제유가 급락,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이 덮쳤던 2015년(0.7%) 등 두 차례뿐이었다.
기록적인 저물가의 원인으로 정부는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을 꼽았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지난해 양호한 기상 여건 덕에 1.7% 하락해 전체 물가를 0.13%포인트 끌어내렸다. 석유류 역시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전년 대비 5.7% 하락해 물가를 0.26%포인트 내리는 효과를 냈다. 특히 농축수산물과 석유류는 2018년 각각 3.7%, 6.8% 상승해 기저효과가 컸다.
공공서비스 물가도 1년 사이 0.5% 내려갔고, 개인서비스는 1.9% 오르는 데 그쳤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정부 정책에 따라 고교납입금(-13.5%), 학교 급식비(-41.2%)에서 가격 하락폭이 컸기 때문이다. 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따라 병원검사료도 1년 사이 9.4% 하락했다. 정부의 복지 확대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이 대폭 깎이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공급 측면에만 원인을 돌릴 순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품목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 공급 상황에 따라 변동폭이 큰 농산물ㆍ석유류 집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연간 0.9% 상승에 그쳐 1999년(0.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0.7% 올라 1999년(-0.2%)을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이런 까닭에 일각에선 ‘경기둔화→소비감소→저물가 장기화→생산감소→경기악화’가 연이어 발생하는 디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상승률 0.4%는 통화당국이 물가안정목표로 삼고 있는 2.0%에서 한참 낮은 수치”라면서 “사실상 디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도 지표가 일부 개선될 수는 있지만 올해 물가 상승률이 워낙 낮은 기저효과 영향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부는 디플레이션 우려에 선을 그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내년(2020년) 물가상승률은 올해(2019년)보다 더 높을 것”이라며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내놓은 보도참고자료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1.0%를 예상했다.
실제 12월 소비자물가는 105.12(2015년=100)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0.7% 올라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 채소류 가격이 상승하면서 농축수산물로 인한 물가 하락폭이 축소됐고, 석유류 가격이 3.8% 올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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