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잔다르크 유세단 이끌며 ‘추다르크’로 불려
“돌 맞는다” 만류에도 “지역감정 타파” 외치며 대구서 유세
“천하의 ‘추다르크’도 청문회 하니까 떠네요. 떨지 마세요.”
판사 출신, 5선 국회의원, 집권 당 대표 출신 거물 정치인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도 지난 30일 국회 인사청문회는 긴장이 됐는가 봅니다. 그런 그에게 미소를 되찾아준 건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의 ‘추다르크 응원’ 이었는데요. 세탁소집 둘째,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 돼지 엄마 등 추 후보자는 정치 경력만큼이나 별명이 많습니다. 그 중 추다르크는 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별명이에요. 프랑스 영웅 소녀 잔다르크와 합성어인 건 알겠는데 언제부터, 대체 왜 추 장관은 추다르크로 불리게 된 걸까요.
때는 1997년 11월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20여 일 앞둔 시점 추 장관은 ‘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고 고향인 대구로 갔습니다. 반(反)호남 정서가 강했던 대구에서 호남 출신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자 유세를 하기 위해서였죠. 당시 그의 동지들은 “우리 당 간판 들고 다니면 돌 맞아 죽는다”고 말렸지만, 추 장관은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자”며 유세 운동을 이어나갔다고 해요. 그때 얻게 된 별명이 바로 추다르크입니다.
“휘어지면서 바람을 이겨내는 대나무보다는 바람에 부서지는 참나무로 살겠다.”
추 장관이 블로그에 올려 둔 인사말인데요. 추다르크라는 별명답게 그의 정치 행보에는 늘 ‘강하게 더 강하게’ 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95년 판사 10년 차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추 장관은 이듬해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대신 서울 광진을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합니다. 그렇게 43.77%라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해 서울 지역구 최초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죠.
‘돼지 엄마’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도 흥미롭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16대 대선에서 후보로 나섰던 2002년.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았던 추 장관은 그 유명한 노란색 돼지저금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 국민 성금 57억원을 모았죠. 노 전 대통령은 추 장관에게 대해 “내가 잘못하면 내 멱살을 잡고 흔들 대찬 여자 추미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대요.
강성 정치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하는 대신 민주당을 지키며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죠. 그 결과 민심의 역풍을 맞은 뒤 17대 총선에서 “반성하겠다”며 삼보일배까지 했지만, 당도 추 장관도 패배의 쓴맛을 보았죠. 이 일을 두고 그는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반성을 했습니다. 이때 삼보일배로 무릎이 나빠져 이후 편한 단화나 운동화만 신는다고 하고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손수건으로 허벅지를 단단히 묶은 모습이 언론에 잡혀 화제가 됐습니다.
강성 추다르크의 새로운 모습도 관심을 끌었는데요. 그가 2017년 10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19살 노견 테리를 돌보는 모습입니다. 추 장관은 심장 질환, 치매, 관절 질환을 앓고 있는 반려견을 공개하며 동물 복지를 강조한 동물보호법 개정에도 참여했다고 해요.
추다르크, 장관이 됐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를 겨눠 고강도 수사를 벌인 검찰과의 관계부터 풀어나가야 하고요. 인사권 행사에 따른 검찰의 반발 또는 정부와 검찰 간 갈등도 예상되는 등 난제가 쌓인 상황이죠. 검찰 개혁을 위한 강단과 추진력 외에도 갈등을 봉합하고 개선할 수 있는 유연성도 요구되는 시점인데요. 오랜 전쟁으로 지친 프랑스인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희망을 불어넣은 잔다르크처럼, 추다르크도 케케묵은 갈등을 봉합하고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감시와 견제의 몫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몫일 겁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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