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만화 속 2020년은 지금과 얼마나 똑같을까
“서기 2020년 어느 날, 지구의 우주개발사령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은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인류 앞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었습니다.”
1989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그린 2020년의 모습이다. KBS2TV에서 방영한 이 애니메이션은 인구 폭발, 자연 자원의 소진, 심각한 공해 등으로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지구를 대체할 ‘UPO’라는 미지의 행성을 찾아 떠나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UPO에 도착한 탐사선은 번번이 조난당한다. 마찬가지로 조난당한 ‘독수리호’ 선장의 아들, 13세 소년 아이캔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구의 우주개발사령부에서 편성한 조난 수색대에 몰래 몸을 싣는다.
1989년 당시 상상한 31년 후, 2020년이 왔다. 애니메이션은 2020년의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을까.
심각한 환경오염… 지구 대체할 행성 ‘UPO’ 찾아 떠난 인류
2020년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2020원더키디’가 예측한 만큼은 아닌 듯하다. 애니메이션에는 “2000년대가 개막되면서 지구에는 첨단 과학 시대가 열렸으나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인류 탐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올해 ‘기후 파업’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을 정도로 환경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당장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는 일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기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인류는 아직까지 생명체가 산다는 행성도 찾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속 아이캔과 수색대원이 발견한 UPO는 고차원 기계 문명의 외계 행성이다. 이 UPO에는 성과 댐이 있다. 물을 사용할 줄 아는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광선이 스며들고 우주복 헬멧이 망가졌는데도 수색대원들은 호흡에 곤란을 겪지도 않는다. “이 곳은 지구와 똑같은 조건을 가진 별이란 말인가”라는 수색대원의 말은 안타깝게도(?) 2020년인 현재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AI) 악마가 있다
만화 속에서는 인공지능(AI)도 다루고 있다. 수색대에 속한 박사는 죽은 공룡 괴물에서 반도체를 꺼낸다. 그러면서 “이 반도체의 회로는 명령자의 뇌파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명령자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도록 고안된 장치”라며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악마로 등장하는 ‘데몬 마왕’은 자신을 발명한 인간을 배신하고 인간을 노예로 쓰고, 기계 조각을 모아 기계 대국을 만들어 우주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는다. 수하 기계들로 하여금 이곳에 도착한 인간을 강압적인 노역에 동원한다. 인간을 세뇌시켜 우주 정복을 위한 대원으로 훈련시키기까지 한다.
UPO의 인간들은 과거 농경 시대에나 썼을 법한 농기구를 갖고 로봇의 명령에 따라 땅을 파고 있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인간을 부리다니. 이것이 내가 인생을 바쳐 연구한 과학의 종말이란 말 인가. 내가 추구한 과학 문명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라며 울부짖는다.
인류는 이제야 진지하게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속 2020년 우주에서 인간은 AI로봇에 지배 당하고 있다. “인공 별을 만든 게 불행의 시초야. 양심을 무시한 과학이 몰랐어.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만든 로봇들에 쫓겨 이 지경에 이르렀다오”라고 말하지만 인공 별도, 인간을 부려 먹는 로봇도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만 세계적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구 밖 다른 행성에서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으로 ‘스페이스X’ 실험을 진행해오고 있다. 머스크는 “지구에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거나 ‘외부의 힘’에 의해 문명이 훼손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옮겨 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날아다니는 차와 아날로그 시계의 어색한 동거
얘기 대부분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탓에 실제 지구의 모습을 다룬 내용은 많지 않다. 만화 속 2020년 지구는 실제와 사뭇 다르다. 바퀴 대신 날개가 납작한 차는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리는가 하면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전히 2020년 지구의 도로 위에는 동그란 고무 바퀴를 가진 차들이 달릴 뿐이다. ‘플라잉 카’ 개발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여전히 먼 훗날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지금은 보편화 한 스마트 워치 대신 주인공은 손목에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 폰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컴퓨터 모니터 역시 지금 기술에 비하면 훨씬 촌스러워 보여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해 마다 연초가 되면 일부 네티즌들은 ‘원더키디가 다룬 2020년이 N년 남았다’며 만화 속 미래 모습과 실제 현실을 비교 평가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어렸을 때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2020년에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분위기가 너무 음침하고 암울해서 꺼려졌다”며 차라리 만화 속 ‘디스토피아적’ 모습이 실현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0년이 왔지만 원더키디에서 묘사된 인류의 우주여행은 현재 기술력으로는 너무 큰 꿈이다. 누구는 그 꿈이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부디 멀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편 KBS 유튜브 채널 ‘KBS Archive: 옛날티비’는 31년만인 2020년 1월 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13화 전편을 연달아 스트리밍 한다. KBS 관계자는 “온라인 상에서 ‘2020년은 원더키드의 해가 아니냐’며 다시 보고 싶다는 네티즌들이 많았다”며 영상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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