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신음하는 지구촌] 1부 <2> 식물정부 역설, 경기가 살아난다
지난달 10~14일 만난 현지 경제인 4명은 공통적으로 “지금 베네수엘라에 달러가 ‘끊임 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경기도 반등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조차 지난해 11월 공영방송에서 “달러화가 나쁘지 않다. 국가의 회복, 생산력 확산,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만족해할 정도다. 베네수엘라 경제 분석기관 에코아날리티카는 최근 지난해 3~10월 시장에 유입된 외화는 민간에서 15억달러와 현지 은행들이 유통시킨 6억5,000만 유로(약 7억3,000만달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지 경제인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100억달러 이상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로 유입되는 달러의 출처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원래 이 나라 안팎에 숨어 있던 달러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직후 베네수엘라 부유층들은 ‘사회주의 국가에 자녀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미국은 물론 캐나다,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등으로 빠져나갔다. 파나마에서 10년 넘게 무역업을 하다 7년 전 베네수엘라로 건너온 50대 훌리오 바크(가명)씨는 “베네수엘라 부자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파나마 등에 숨겨뒀던 자금이 (한국의 지난해 보유외환 규모와 비슷한) 4,40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며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금출처 등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그 자금 중 일부가 다시 베네수엘라로 들어왔고 현재도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2015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500만명 안팎의 이민자ㆍ난민들이 고국 가족들에 송금하는 돈, 일명 레메사(Remesa)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레메사가 작년 한 해에만 3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현지 관계자들은 “레메사는 달러의 직접 유입이 아닌 중개업체에 달러를 맡기면 베네수엘라에 있는 중개업체가 이를 확인한 뒤 가족에게 그만큼의 볼리바르화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달러의 직접 유입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다만 레메사를 받은 가족들이 곧바로 소비를 하기 때문에 경기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번째는 정부의 돈 세탁이다. 경제인들은 이를 통해 유입되는 달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봤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원유 수출길이 막히자 마두로 정부가 밀무역을 하면서 자금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주로 밀무역자나 마피아에 금이나 석유를 주고, 국경 지역이나 해상에서 달러화로 받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훌리오 바크씨는 “원유 수출이 금지됐지만,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위성항법장치(GPS)를 끈 채 해상으로 나가 다른 국가 해상에서 켜면서 베네수엘라발 원유인 점을 숨긴다”며 “금은 정부가 마피아에게 주면 이들이 대신 국경지역에서 트럭째 팔고 달러를 실은 트럭을 받아오는 방식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4월 “베네수엘라 정부가 중앙은행에 보관하던 금 8톤을 인출했다”고 밝혔다. 미국 제재로 부족해진 외화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 금을 몰래 매각했을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카라카스=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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