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 유가족의 절반이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자살률 탓에 해마다 6만~12만명의 유가족이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삼성서울병원이 2018년 수행한 자살유족 지원방안 연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54.4%가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일반인(15.9%)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유가족의 20.5%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 역시 일반인의 경험률(3.3%)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조사시점에서 유가족 37%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16.5%는 구체적인 시행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조사는 유가족 27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고인이 사망한 지 2년 이내인 경우가 115명(42%)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유가족의 29.4%는 살아오면서 정신건강상 문제로 전문가와 상의한 경험이 없었다. 이는 유족의 71.9%가 자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개인적 자책감 등의 이유로 고인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는 2018년 정부 조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 나서는 한편 우울증 치료를 받기 쉽도록 정신질환자에게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는 2017년 전체 자살 동기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31%)을 차지할 정도로 자살에 미치는 영향이 높은 까닭이다. 실제로 유가족의 71.3%는 우울증을 앓았는데 발병 위험이 일반인의 18.25배에 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한 비율이 73.9%로 나타나 절반 이상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30.1%는 알코올의존 등 비정상적 음주습관을 보였다.
보고서는 유가족 가운데 자살 고위험군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자살 유가족은 2017년 한 해에만 최소 6만2,315명에서 최대 12만4,630명이 새롭게 발생한 것으로 추산돼 이들을 모두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 1건당 5~10명의 유가족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는 여성 유가족이나 고인의 자녀가 겪는 정신건강 문제가 다른 유가족의 경우보다 더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는 파악하고 있지만 이제 대응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 단계다. 사별의 아픔을 회복한 유족이 열악한 처지에 놓인 유족을 지원하는 동료지원 활동가 양성은 지난해 말에야 시동을 걸었다. ‘자살 유족 지원 홍보사업’의 경우 올해 1년간 책정된 사업비 총액이 2억원에 그쳤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텔레비전(TV)광고는 물론 라디오 광고, 신문지면 광고 등을 통한 인식개선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정부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선정한 자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말과 상처가 되는 말 다섯 가지.
*위로가 되는 말 : 1. 많이 힘들었겠다 2. 네 잘못이 아니야 3. 힘들면 실컷 울어도 돼 4. 고인도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랄 거야 5.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상처가 되는 말 : 1. 불효자다, 나약하게 자랐나 보네 등 고인에 대한 험담 2. 이제 그만 잊어라 3. 너는 고인이 그렇게 될 때까지 뭐했어? 4. 왜 그랬대? 5.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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