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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냐, 아니냐” 대치동의 이분법… 의대 합격자 수로 고교 서열화

입력
2020.01.08 04:40
수정
2020.01.13 14:4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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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3>만들어지는 의사들

부모들, 의사 타이틀이 계층 대물림 보장 인식… 별도 사교육시장 존재

의사 할아버지가 입시 챙겨 “병원 물려주려면 재수ㆍ삼수가 대수냐”

지난달 28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대치는 서울대를 안 가요. 의대를 가지.”(대치동 A학원 원장)

2020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내 딸, 내 아들이 평생 의사로 살 수 있도록 의대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고, 누구의 손도 맞잡을 수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에서 ‘의사 타이틀’만큼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건 없다는 공통된 인식 탓이다. 오죽하면 “대치동에서는 이과만 존재한다(정현두 대치동 미래탐구 학원 입시센터장)”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해마다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대로 복귀하는 대학들이 많아지면서, 의대 정원이 늘고 있는 점도 대치동의 의대 입시 열기를 더 부추기고 있다. 대치동이라 불리는 ‘빗장도시’ 안에서 의사로 치환되는 미래의 부를 양육하는 양태는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취업률 현황을 들여다보면 자녀의 직업으로 오직 의사만을 원하는 대치동 부모들의 속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교육부의 ‘2018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 따르면 대졸자 취업률은 의약계열이 83.3%로 가장 높고, 인문계열이 57.1%로 가장 낮다. 문과생의 절반 가까이는 취업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셈 빠른 대치동 부모들은 명문대 졸업장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내 자식도 나만큼 살려면 더 확실한 자격증, 의대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의학계열 정시모집 경쟁률 등. 그래픽=강준구 기자
의학계열 정시모집 경쟁률 등. 그래픽=강준구 기자

◇의대 입시에 특화된 대치동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그래서 의대, 그중에서도 서울대 의대 입시 결과에 너도나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치동 고1 학부모 임현아(가명ㆍ45)씨는 “대치동에서는 의대 입시 결과로 고등학교 서열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동네는요, 11월 말에 서울대 의대 수시 1차 결과가 나오면 바로 (합격자들의 출신 고교 명단이) 돌아요. 예를 들면 서울과학고 2명, 외대부고 3명, 휘문고 3명, 단대부고 2명 이런 식으로 통과했다는 게 딱 나와요. 중3은 이 결과를 반영해서 고등학교를 지원하는 거고요.”

대치동 부모들의 의대에 대한 열망은 사교육 업체가 주최하는 의대 설명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많게는 1,000명까지 몰리는 일명 ‘의치한수의예(의대ㆍ치대ㆍ한의대ㆍ수의대의 줄임말) 설명회’에는 초등학생, 중학생 학부모가 주류를 이룬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대치동에서는 아예 어릴 때부터 의사를 목표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대 설명회를 하면 바쁜 의사 부부를 대신해 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의 입시 정보를 챙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치동에는 ‘의대 종합반’ ‘서울대 의대반’처럼 의대 사교육 시장이 별도로 존재한다. 의대 합격을 위해선 결국 대치동 학원가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말,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대구의 고3 학부모 이모(47)씨도 곧 있을 서울대 치대 다중미니면접(MMI) 때문에 아이와 대치동 인근 호텔에서 머무르는 중이었다. MMI는 딜레마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보는 의대 인성 면접으로, 이씨는 대치동의 한 학원에 70만원 상당의 MMI 대비 코스를 등록했다고 했다. 그는 “호텔에서도, 학원에서도, 모두 대구에서 온 같은 학교 학부모들을 만났다”며 “대구에도 학원은 많지만 이런 특별 프로그램이 개설된 곳은 대치동뿐”이라고 말했다.

‘의대 출신 과외 선생님’을 찾는 수요가 따로 있는 것도 대치동의 특징 중 하나다. ‘대치동 키즈’이자 서울의 한 의대 재학생인 강모(26)씨도 고등학생 때 올림피아드(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직전 해에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탄 서울대 의대생을 어렵게 소개받아 과외 받은 경험이 있다. 강씨는 “요즘 대치동에서는 전문 학원 강사보다는 1, 2년 먼저 경험한 선배한테 과외 받는 게 유행”이라며 “특히 의대 출신 선생님은 희소성 때문에 과외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귀띔했다.

◇계층 대물림의 가장 확실한 방법, ‘의사’

대치동 부모들의 의대 선호 현상 이면에는 고용 불안, 저성장 시대를 사는 이들의 관성화된 우려가 뿌리내리고 있다. 의대라는 학벌을 물려주지 못하면, 내 자식은 나만큼 누리고 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의대 진학만큼 이후 수십 년간의 고소득을 담보해 주는 ‘확실한 카드’가 없다는 점도 냉혹한 현실이다. 618개 직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담은 한국고용정보원의 ‘2017 한국의 직업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 14개 부문 전문의가 평균 연봉 상위 20개 직업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중3 자녀를 둔 조모(41)씨도 자녀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대치동 학부모 중 한 명이다. 조씨는 “대치동 부모들은 자식이 전문직을 갖지 않으면 부모만큼 살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애들을) 다그쳐서 공부시킨다”라며 “아무리 아빠가 의사여도 애가 공부 못하면 병원을 이어받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재수, 삼수 시키면서도 의사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임현아씨도 아이에게 의사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대학 보낸 엄마들의 자식 취업 걱정을 들으면 ‘전문직을 시켜야 하나’라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주변에 서울영재고 졸업하고 서울대 가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입학을 준비하는 애가 있는데, 그 엄마조차도 ‘아 우리 애 그냥 전문직 갖게 할 걸 그랬나 봐’ 이런 얘기 하면 겁이 덜컥 나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도 강남에 집 한 채라도 있는 건 남편이 전문직(의사)이고 성실하니까 이렇게 된 거지, 이걸로 애 미래까지 책임져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특히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부모라면, 자녀의 의대 진학에 더 매달린다. 대치동 한 유명 학원에서 근무했던 최진우(가명ㆍ52)씨도 “3대, 4대가 의사였던 ‘의사 집안’ 부모들이 학원을 찾아와 ‘학교는 중요하지 않으니 우리 애 의대만 보내달라’고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대치동에는 아빠가 강원도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엄마와 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전셋집 얻어 살며 의대를 목표로 준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며 “한 때는 강원도 의사 가족이 다 대치동에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에 이어 2022학년도 대입부터는 약대까지 학부 선발로 전환되면서 대치동의 의약계열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관측이다. 임성호 대표는 “이미 전국 의대, 치대, 한의대 합격생의 70~80%가 강남, 서초 쪽에 몰려 있다”며 “약대까지 학부로 전환되면, 강남 상위권의 이과 쏠림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래 사회에 대한 불확실성, 양극화 등이 맞물리면서 일종의 가업을 잇는 직업 대물림 현상이 더 강화하고 있다”며 “교육을 매개로 한 사회적 불평등이 고착화하기 전에 국가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적극적 우대조치)’과 같은 사회적 배려에 나설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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