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번에는 ‘중도ㆍ보수 통합신당’ 창당 카드를 꺼냈다. 자신이 관철시켜 의원들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7일 보도된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면, 황 대표는 설 이전 통합추진위 구성 제안, 설 이후 당 공천관리위원장 인선, 국민 예상보다 훨씬 강한 ‘물갈이’를 두루 언급했다. 7일 전 ‘대표에게 일임하라’며 의원들에게 사퇴서까지 받은 투지가 무색하다.
그런가 하면 전날(6일)에는 같은 신문에 안철수 전 의원의 이메일 인터뷰도 실렸다. 안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를 “분열적 리더십, 이념에 찌든 낡은 정치 패러다임”이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을 향해선 “수구ㆍ기득권ㆍ꼰대 이미지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의도 정풍 운동’을 거론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발언에서 읽을 수 있는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구상을 내세웠지만 그 저변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온데간데 없다.
◇대표 퇴진론은 정치공학?
황 대표는 점점 당내에서조차 입지가 흔들리는 처지다.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그는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해왔지만, 성과는 없었다. 말의 일관성도 상실했다.
당 대표가 된 지 2개월만에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결사항전’을 선포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임명해서다. 9월엔 삭발을 하고 11월엔 급기야 단식 투쟁도 했다. 문 대통령에게 일 대 일 회담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기다렸다는 듯 시작한 단식이었다.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정국에선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당시 황 대표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대화도, 협상도 거부하며 스스로 돌파구도, 퇴로도 막은 결과다. 당내에서 다시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황 대표는 뜬금없이 의원직 총사퇴를 들고 나왔다. 실효성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결의에 당내에서조차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점점 위기에 몰리자 이번엔 신당 창당을 카드로 삼은 건데, 이는 ‘나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는 각오로 해석된다. 대표 사퇴론을 두고는 “정치공학적 얘기”라고 일축했다. ‘정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기본 원칙을 ‘정치공학’으로 깎아 내린 거다.
또 하나 의문은 그가 밝힌 정치 일정이다. 총선을 중도ㆍ보수 신당으로 치르겠다면서, 공천은 공천대로, 이른바 ‘비례한국당’은 계획대로 창당을 할 태세다. 앞뒤가 맞지 않는 구상이다.
◇자신은 기득권 아니라는 안철수
안 전 의원의 인터뷰도 비슷한 맥락에서 흥미롭다. 그는 현재 여야를 싸잡아 “기득권”이라고 몰아붙였다. 다시 말해 자신은 기득권이 아닌 ‘새정치인’이라는 의미다.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세 차례(새정치민주연합, 국민의당, 바른미래당)나 창당에 참여한 그를 국민도 그렇게 판단할 지는 의문이다.
안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의 실패도 결과적으로 제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새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발언을 전반적으로 볼 때 그는 결국 독자적인 결사체로, 4ㆍ15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실패의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정치를 혁신할 사람도 나’라는 논리적 흐름이 아주 어색하다. 책임을 말하면서도 무엇이 잘못인지 자성은 없다. “(마라톤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이끌어줬다”고 한 데서 그의 자신감만이 확인된다.
안 전 의원의 발언이 과거보다 진일보한 게 있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비(非)좌파’라고 규정한 점이다. “지금 진영 간 우열은 확실하게 좌파로 넘어갔다. 진영 대결을 할수록 현 집권 세력이 유리하다”고 한 데서 드러난다. 그간 안 전 의원은 자신의 정치성향을 단정한 적이 없다.
혁신을 외치면서 책임은 모르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는 게 한국 정치의 서글픈 단면이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