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Bad Parents zone(노 배드 패런츠 존). 어린이를 동반하신 손님께선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제주도 해맞이해안도로 길가에 위치한 ‘대수길다방’ 카페. 캔들을 비롯해 각종 소품도 함께 판매하는 카페 유리문에는 ‘노 배드 패런츠 존’이라는 다소 생소한 문구가 붙어 있다. 서울에서 가족여행을 온 김민주(33)씨는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김씨는 “처음엔 노키즈존인 줄 알고 발길을 돌리려다 다시 보니 노 배드 패런츠 존이었다”며 “아이들에게 안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노키즈존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한국 사회가 일부 상점의 주도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이들의 출입을 허용하는 키즈존과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노키즈존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부모는 출입 금지”라는 의미의 ‘노 배드 패런츠 존’이 그 중 하나다.
노 배드 패런츠 존은 문자 그대로 ‘나쁜 부모(Bad Parents)는 출입 금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 경고의 의미일 뿐 실제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에게 철저한 자녀 관리를 당부하는 차원이다. 다만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할 정도의 소란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즉시 환불을 받고 매장을 나가야 한다. 전국에서 노 배드 패런츠 존으로 운영되는 음식점은 아직 손에 꼽을 정도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주도와 대구 일대를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점주들은 매출 감소와 아이들의 기물 파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여전하지만 “잘못된 건 부모지, 아이가 아니지 않냐”는 마음으로 노 배드 패런츠 존을 시작했다고 했다. 대구에서 동남아음식 전문점 ‘동양국수백과’를 운영하는 이상윤(35)씨는 2년 전 고심 끝에 노키즈존 대신 노 배드 패런츠 존을 도입했다. 식당 앞마당에 아이 소변을 뉘는 몰상식한 부모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기도 했지만 가족 손님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단다. “4살된 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없었다”는 서현진(36)씨도 서귀포에서 카페 ‘제이아일랜드’를 노 배드 패런츠 존으로 운영 중이다.
다수의 식당이나 카페가 아동 출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갈 곳 잃은 부모들은 노 배드 패런츠 존 도입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19개월 아들을 키우는 한주연(31)씨는 “부드러운 표현이라 듣는 쪽에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양립불가능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이는 문제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부모는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기회를, 업소는 피해를 주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를 확보해 ‘아이가 문제’라는 잘못된 사회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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