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이슬람 거리 적막… 이란인 “국가가 중요” 강경 반응도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8일 한국에 터를 잡은 무슬림 이민자들은 종일 현지 뉴스를 지켜보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속을 태웠다. 얼굴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슬람 거리의 공기는 잔뜩 흐린 날씨만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슬람사원 좌우로 뻗어 있는 이 거리엔 40여 개의 무슬림 상점이 밀집해 타운을 이루고 있다. 평소라면 이슬람사원에 예배하러 오는 무슬림으로 거리가 북적이지만 이날은 예배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이슬람 거리에서 만난 무슬림들은 양국간 갈등이 자칫 전쟁으로 번지진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절대 전쟁만큼은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넘게 이 거리에서 이란 식당을 운영하는 알리(44)씨는 “전쟁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니 “난 이란ㆍ이라크 전쟁 때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난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내 가족이 이란에 남아 있다”며 “양국 갈등이 심해져 전쟁이라도 한다면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은 어떡하느냐. 제발 전쟁만큼은 하지 않게 극적으로 타협했으면 하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문화원 근처에서 만난 무사이씨는 “예전 시리아나 이라크도 미국과 전쟁을 했다가 패해서 주권을 빼앗겼는데 혹시 이란도 전쟁에서 져 그런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국 공세에 이란인이 하나로 단결해 맞서야 한다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한 이란인은 “우리는 항상 국민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한다. 국가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며 “이란에 가족이 5명이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걱정하기보다는 국가를 먼저 걱정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애먼 데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무슬림 상인들과 한국에 온 이란 유학생들은 최근 현지 물가가 뛰면서 적잖게 피해를 보고 있다. 양국 갈등이 심해지면서 최근 이란 내 물가는 15배가 올랐다고 한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현지 물품 가격 역시 덩달아 뛰고 있다는 게 국내 무슬림 이민자들의 설명이다. 장 후세인씨는 “최근 할랄 식품 수입가격이 치솟아 영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달러가 오르고 이란 화폐 가치는 뚝 떨어지면서 이란에서 온 유학생들은 특히 초비상이다. 알리씨는 “최근 몇 개월 동안 한국에 들어온 유학생들의 유학 비용이 몇 배씩 뛰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이란으로 돌아간 이들도 꽤 된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가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테헤란 대학을 다니다 유학 중인 마흐사(22)씨는 “국가 간 갈등이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제재로 이란인은 한국에서 통장이나 신용카드도 쉽게 발급받지 못한다”면서 “가족들이 전부 테헤란에 살고 있다. 전쟁이 나는 건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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