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대리해 온 김형태 변호사 “왜 강제환수만 밀어붙이나
특별법 제정ㆍ법원 조정 등 대안… 화근 된 판례 변경 급선무”
“판례를 바꾸면서도 전원합의체를 안 거쳤고, 배상금액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장시간’의 기준도 불명확해요. 납득 못 할 대법원 판결을 바로잡는 게 출발점입니다.”
국가의 ‘채무 변제’ 압박으로 또다시 경제적 고통을 겪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구제 해법을 김형태(64)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는 이렇게 제시했다. 문제의 뿌리에 손을 대야만 꼬일 대로 꼬인 현 상황을 풀 수 있다는 의미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혁당 피해자들을 줄곧 대리해 온 그를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변호사가 지목한 대법원 판결은 2011년 1월 과거사 손해배상 선고다. 배상 금액은 위자료(원금) 및 피해 시점부터 판결 시점까지의 지연손해금(이자)으로 이뤄진다. 과거사 사건은 오래전 사건이라 기본적으로 이자 금액이 꽤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 3부는 ‘오래 전 사건’과 ‘통화가치 변동’이라는 사유를 들어 “과거사 사건에선 불법 행위 시점이 아니라, 사실심(2심) 종결 시점부터 이자가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5년) 등에 대한 국가의 배상액을 대폭 깎은 셈이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잘못한 시점부터 이자 지급 의무가 생기는 건 상식인데도, 대법원은 이자 발생 시점을 ‘지금’으로 바꿔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명백한 판례 변경인데, 당시 대법원은 판례 변경 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회부 원칙을 어기고,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일반적인 파기환송이 아니라 파기자판(원심을 깨고 직접 판결)을 선택, 피해자들이 원금 상향 등을 위해 다시 한번 다퉈볼 기회마저 차단했다고 했다.
“다른 과거사 사건을 통해 잘못된 판례를 바꾸는 게 급선무예요. 소급 적용은 안 되니, 변경된 판례를 근거로 국회가 특별법 제정에 나서 그 사이 발생한 피해를 보상해야죠.” 김 변호사는 ‘천문학적 배상금은 국고 낭비’라는 일부 목소리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받은 배상금은 거의 모두 국내에서 돌고 돌았다.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한 방법으로는 ‘법원 조정’도 있다. 국가가 부동산 강제경매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대신, 인혁당 피해자들도 최소한의 반환 노력을 하는 합의를 법원 중재로 맺으면 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국가의 채권 포기도 아니고, 법원의 조정에 따른 것이라면 ‘배임 시비’를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당이득금 소송, 강제집행 청구 이의 소송 등에서 (조정을) 추진했고, 법원도 적극 의지를 보였어요. 그러나 국정원의 이의 신청으로 무산됐어요. 낮은 수위의 해법이지만, 계속 시도할 생각입니다.”
다만 국정원의 반환 요구에 이미 응한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소지는 있다. 부당이득금 소송을 당한 피해자 및 가족 77명 중 34명은 임의 변제하고, 다른 34명은 재산이 없어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하다. 나머지 9명에 대해선 현재 부동산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판례 변경→특별법 제정’이라는 게 장시간 피해자 소송을 담당해온 김 변호사의 생각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김민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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