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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 "원주민 삶도 풍성해 지는 '공정여행'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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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 "원주민 삶도 풍성해 지는 '공정여행' 떠나요"

입력
2020.01.13 04: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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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가 낸 돈, 외부 유출 없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 가도록 할 것”

수익 창출보다 문화 보존 강조... 필리핀 계단식 논 지키기 등 프로그램 설계

공감만세 제공
공감만세 제공

“공정여행(公正旅行)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의미는 아닙니다. 여행자가 지불한 돈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사회와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거니까요.”

고두환(36·사진) 공감만세 대표가 제시한 ‘공정여행’의 개념은 심플했다. 원주민과 여행자의 만남으로, 현지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여행이란 게 고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틀에 박힌 형태의 수동적인 여행과는 거리를 뒀다. “공정여행은 오히려 여행자와 원주민의 삶이 모두 풍성해지고 유익해진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 대표의 머리 속에 자리한 공정여행은 서로에게 보완적인 ‘윈윈’ 형태의 모델로 읽혔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내세워 2011년 설립된 여행사다. 공감만세의 밑그림은 지난 2008년 군 제대 이후 다녀온 고 대표의 태국 해외봉사 경험에서 그려졌다. 당시 치앙마이 카렌족 마을에 바이오에너지 생산시설을 설치해주면서 지켜 본 원주민의 고단한 삶이 고 대표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이듬해 다녀온 필리핀 중북부 ‘이푸가오’ 지역 탐방은 공정여행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하게 했다. 이푸가오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으로 유명해지면서 관광수요가 급증했지만, 원주민들은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농사 대신 서비스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농사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대안이 필요했다. “계단식 논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지 6년 만에 ‘블랙리스트(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로 재분류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보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유네스코에서 설계해둔 보존 방법을 참고하고 지역 관광센터, 국제 비영리단체(NGO)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SITMO)’과 함께 지역을 살리기 위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됐어요” 고 대표는 10년 전 기억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필리핀 이푸가오 '계단식 논'. 공감만세 제공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필리핀 이푸가오 '계단식 논'. 공감만세 제공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원주민들이 고 대표를 믿지 않았다. 수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른 사업가들과 달리 문화보존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고 대표를 사기꾼 또는 ‘사이비’ 종교 전도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관광객이 논을 파괴하면 올 때마다 일손을 돕겠다’ ‘콜라 대신 코코넛 주스를 마시겠다’ ‘외부인의 산장 대신 당신들의 집에서 지내고 숙박비를 기부하겠다’ 등의 계획을 설명하면서 원주민들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은 결국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고 대표에게도 힘이 실렸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고 대표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 공정여행에 대한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운도 따랐다. 2011년,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보증으로 디자인 쇼핑몰 ‘1300K’의 투자를 받으면서 법인 설립의 토양도 마련했다. 투자자들은 공감만세의 독립적인 운영권을 보장하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는 등 ‘착한 투자’까지 약속했다. 이 약속을 자양분으로 공감만세는 현재 5만여명의 방문객을 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지금까지 견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해외 여행을 통해 잉태되긴 했지만 사실 고 대표의 마음 속엔 언제나 ‘공정’에 대한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 공정한 과정이 보장되길 바라고, 우리 모두가 서로 의지하는 사회를 만드는 꿈을 어릴 적부터 키워왔다. 공감만세란 회사 이름에 ‘공정’이 들어간 배경이기도 했다.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 전통 축제에서 한국 청소년 여행객이 원주민과 함께 춤을 즐기고 있다. 공감만세 제공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 전통 축제에서 한국 청소년 여행객이 원주민과 함께 춤을 즐기고 있다. 공감만세 제공

“사실 공감만세는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을 줄여서 만든 이름인데, 회사 구성원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회초년생, 실패를 경험한 스타트업 창업자, 연구자, 문화활동가 등 구성원들의 배경은 다양하지만, ‘공정’과 ‘여행’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 대표는 공감만세에 소속된 직원들의 공감대를 이렇게 전했다.

분야가 여행이다 보니, 지난해부터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대한 고민도 커 보였다. 지난해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민간교류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공감여행은 매년 7~8월 여름방학 시기 일본에서 '평화 여행'을 개최한다. 참가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 어린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 어린이, 시리아 난민 어린이 등이다. 물론 참가비는 공감만세가 부담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끊겼을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전쟁이 발생했던 것처럼, 지금 상황에서도 한일간 유의미한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행 주제가 평화, 공생, 역사 등이기 때문에 올해도 개최해서 민간 교류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공감만세가 도우미로 나설 것이란 생각으로 이해됐다.

한국 청소년이 필리핀 언어 '따갈로그어'를 배운뒤 어설프게 현지인과 소통하는 모습. 공감만세 제공
한국 청소년이 필리핀 언어 '따갈로그어'를 배운뒤 어설프게 현지인과 소통하는 모습. 공감만세 제공

인터뷰 말미에선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공감만세는 현재 연간 매출이 약 15억원, 수익성도 5% 이상이다. 크지는 않지만 매년 사업 규모도 성장하고 있다. 업력이 10년 가량 되다 보니 고정 고객도 있고, 안정적인 수익 상품도 늘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기업의 경우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거나 폐업하는 사례도 허다한 게 사실이다. 고 대표는 “공감만세와 같은 사회적기업이 많아지기 위해선 ‘실패가 허용되는 사회’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선 한 번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사회적기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이젠 우리 사회에도 실패를 배움의 과정으로 승화하는 건전한 생태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대표의 마지막 조언에선 강한 파동이 전해졌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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